2009. 3.13.쇠날. 비

조회 수 1068 추천 수 0 2009.03.28 21:49:00

2009. 3.13.쇠날. 비


이번 학기 아침 수련을 시작합니다.
마을이 긴 겨울에서 잠을 깨는 3월이면
우리도 겨울잠처럼 쉬던 몸을 깨워
이른 아침의 수련을 시작하지요.
그런데 3월이 되고도 이러저러 미루고 있었더랍니다,
아직 어깨가 많이 움츠러드는 산골짝이라며.
마침 미선샘도 왔고,
이제 상주할 식구들 다 모였다고
오늘부터 수련도 하고 명상도 하였습니다.
개운한 아침입니다.

이번학기는 바깥에서 유화를 그리는 오전입니다.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겠다는 기대치도 아니고
그저 명상 하나 하듯
잠시 캔버스 앞에서 색깔들을 만나지요,
우리가 국화(한국화)를 그리하듯이.

“나오는 길에 나 합기도 가면 안 돼?”
애살이 많은 아이입니다.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의 고달픔이 만만찮을 텐데
학교로 먼저 돌아와야 하는 엄마는 먼저 가고
저는 버스 타고 들어오겠다는 겁니다.
작년 5월 크게 다쳐 수술을 했던 다리가 마음 쓰여
말리기는 합니다만
배움에 대한 열정이 좋습니다.
아이들은 배우기를 정녕 즐깁니다.

식구들이 모두 한바탕 웃었던 저녁밥상 앞이었습니다.
밥상을 물리고 차를 마시는 어른들 저 편 곁에서
무슨 글인가를 쓰던 아이가
먼저 썼던 것들을 열심히 지우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못 견뎌하고 지우고 다시 쓰고, 참, 성격이야...
자기가 힘들잖아, 저리 살면.
지 삶이 얼마나 고달프겠어?”
그런데 아이가 덩달아 말을 받았지요.
“맞아, 고달파. 삶은 그렇게 못 살아, 공부는 그렇게 해도.”

같이 그림을 그리는 어르신 한 분 계십니다.
그 클라라님과 얼마 전 주례답례로 온 옷에 대해 얘기 나누었지요.
고풍스럽고 좋은 옷인데
굳이 입을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더 잘 입을 수 있는 이가 입게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옷 같은 거 쉽게 선물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젊은 부부가 얼마나 생각해서 보냈을까...”
그런데, 그걸 꼭 입어야할 자리가 있을 거다.
그때 고맙다 하고 입을 거다, 잘 챙겨두라셨습니다.
어른의 지혜, 얼마나 간단한가요.
아, 어른, 그런 어른들을 좇으며 우리가 삶을 바로 세우고
우리 또한 그런 어른이 되려고 애쓴다 싶데요.

지난 여름 유니세프의 국제유스캠프 평가위원으로 왔던 주욱샘이
공을 보내준다 연락해왔습니다.
여러 사람들이(체육관련종사자들) 공을 모아 주었다지요.
어디 가면 물꼬를 알더라고,
반갑더라고 덧붙여주셨지요.
그 소식이 여기도 반갑습니다.

광주에서 하는 좋은 콘서트 하나에 벗이 초대를 했습니다.
마음이야 날아갔음 좋겠지요.
잊지 않고 마음을 실어 보내는 그가 있어
이 봄날이 더욱 다사롭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참 별 것 아닙니다.
그런 마음 주고받으며 사는 일 아닐는지요.
봄날들 부디 기쁨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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