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빈들 이튿날, 2009. 3.21.흙날. 저녁 비

조회 수 1141 추천 수 0 2009.03.29 20:38:00

3월 빈들 이튿날, 2009. 3.21.흙날. 저녁 비


전통수련으로 아침을 열고 달골을 내려왔습니다.
오전에는 들에 나가 냉이를 캐기로 했지요.
그것 또한 수행입니다.
더러는 호미를 들고 더러는 칼을 들었습니다.
마을 뒷산 숨은 못을 향해 오르는 길은
볕이 좋아 다부룩다부룩 봄나물들 넘치지요.
아이들은 메뚜기처럼 풀밭을 헤치며 냉이를 캤습니다.
달래도 한움큼이었네요.

점심을 먹고는 잠시 쓰레기 분리교육이 있었습니다.
머무는 동안 지켜야할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먹고 사는 것들을 어떠한가,
버려진 껍질들을 통해 우리 사는 삶을 돌아보려했지요.
머리 맞대고 이게 플라스틱 가운데서도 어떤 종류인지
이렇게 뒤섞인 것들은 어떻게 나눠서 정리할 수 있는지
고민들을 꽤나 해야 했답니다.

오후에는 달골에 올랐습니다.
한 패는 류옥하다의 남도 할머니댁에서 온 나무를
창고동 앞 울타리에 심고
다른 한 패는 포도밭에 들어 마른 풀들을 뽑아냈지요.
새참을 마련하여 올라갑니다.
떡을 찌고 매실과 개복숭효소를 냈지요.
사람들이 아직 마을로 내려오기 전
저녁버스를 타고 들어온 유설샘과 미루샘,
양지바른 곳에 가서 돌나물과 쑥을 뜯어왔네요.
“잘 모르겠더라구요.”
둘이 오붓하게 냉이를 캐러보냈는데
손에 들려온 것들이 그것들이었습니다.
“돌나물, 이건 또 어찌 알았대?”
“그냥 먹을 것 같아서...”

어둠이 내리자 비도 몰려옵니다.
설거지를 끝낸 모두가 다시 달골로 오르지요.
밤수행은 춤명상으로 합니다.
경칩에 놀라 깨어난 개구리마냥
몸을 깨우는 춤으로 시작합니다.
한 가운데선 항아리에 꽂힌 생강나무 꽃이 봄을 알리고
온 방을 그 내음으로 채우고 있었지요.
다음은 춘분절에 춤을 추었습니다.
원래 안무자는 ‘삶터짓기’라는 제목으로
집을 짓는 과정을 러시아 전통음악에 맞춘 것인데
우리는 또 우리 삶에 비춰 ‘춘분농사’로 재구성합니다.
멀리 한 해를 내다보며 마음을 다 잡고,
땅을 둘러보고 쟁기로 갈고,
산짐승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고,
씨를 뿌린 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밭에 뿌리고,
그리고 흥겨운 잔치를 벌이고는
하늘과 땅에 경배하였지요.

난로에 불을 지피고 고구마를 굽고
그리고 앵두효소를 냈습니다.
방 한 켠에서 하얀 화분에 담긴 수선화가
마음을 더욱 밝혀주었지요.
그리고 뒤척이는 봄밤처럼
우리도 봄비 소리를 들으며 데굴데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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