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물날. 눈발

조회 수 1013 추천 수 0 2009.04.12 23:03:00

2009. 4. 1.물날. 눈발


눈발 날립니다,
그것도 굵은 눈발.
사월에 날리는 눈이라니...
오늘은 마석 모란공원에 누운 한 선배의 생일입니다.
당시 전 국민에게 알려지기도 했던 그의 죽음은
오래도록 후배들을 각성케 하는 힘이 되기도 하였지요.
몇 해는 그의 생일을 기려 몇 사람이 가기도 했고
그 즈음엔 아버님께 안부 전화를 넣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전화는 줄었지요.
잊혀졌기보다 장성해가는 우릴 보며
당신 슬픔이 배가 되는 것만 같아 그랬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을 떠나며, 그리고 서울을 떠나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가
순전히 오늘 눈 때문에 젊은 날의 한 때가 그리 떠올랐더랍니다.
1991년 선배들과 마지막으로 청량리에서 선배의 산소로 가던 버스에 올랐던 날도
봄눈 내린 다음날이었지요.
4월 초하루, 함박눈 날리고 있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가는 일이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대학에 강의를 하러 가는 일은 없습니다)
때로 필요치 않거나 참말 시간이 아까운 것도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수는 당신의 권위를 그렇게라도 세워야겠다는 듯
아무 쓸모도 없는 일에 행정적 절차를 앞세워
기어이 자리에 앉혀두려는가 하면
오늘 같은 경우도 있지요.
“교장선생님이 왜 오세요, 이거 학생들 진로지도하라고 있는 건데...
그냥 오지 마시고 프린터물 드리면 보시고,
그거 제게 주실 필요도 없고 그냥 보관하세요.”
같은 일을 해도 이리 다릅디다.
덕분에 그 시간을 귀하게 쓰게 된 거지요.
하다 못해 잠시 쉬어도 얼마나 요긴한 시간이 되겠는가 말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도 사람살이를 배우지요,
어떤 상황에서 어찌 하는 게 좋겠구나 하는.

그리움은 문득 문득 스미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지끈해오는 두통처럼 얼얼하게 내내 오기도 합니다.
서서히 오르는 취기처럼 말이지요.
그래도 시간은, 혹은 망각은 힘이 세서
‘그’가 없는 세상이 너무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도
십년을 넘어 흘러보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사랑했던 친구를
백혈병으로 잃었던 세월이었지요.
때론 누가 없이는 무엇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숨쉴 수 없다 싶어도
또 어떻게 살아지는 것이 생인지라
그가 없는 세상에서 아이 낳고 기르고 세상과 만나고
그가 경험하지 못한 나이를 살아가면서 늘 그를 그리워하였더랬지요.
오늘 피로에 지쳐 누운 잠자리에서
이제는 그의 부재에 덜 쓸쓸해진 마음이 되려 쓸쓸하여
한참 뒤척이다 다시 눈뜨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사는 일이 참 그래요,
어째도 날이 가고 늙어가고 죽음도 그렇게 자연 안에서 오게 될 겝니다.
그저 나날을 충만하게 살아야지 싶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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