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나무날. 따뜻하네요

조회 수 1064 추천 수 0 2009.04.12 23:04:00
2009. 4. 2.나무날. 따뜻하네요


일찍 뜬 달빛이 마을을 싸안은 저녁
식구들이 마당을 거닐었습니다.

2년을 넘게 드나든 복사집이 있습니다.
물꼬 교무실에도 프린터기와 복사기가 있기는 하나
양이 많을 때나 읍내를 나가서 급하게 필요할 때 가는 곳이니
심심찮게 드나드는 거지요.
“얼마예요?”
아주 아주 양이 많아서 에누리를 해줄 요량이 있느냐 살피는 것도 아닌데
댓 장의 프린터물을 들고 물었습니다.
“맨날 물어 봐...”
오늘 주인장은 다른 때와 달리 이리 답하고는
제본하던 일을 계속 하고 계시는 겁니다.
아...
그 순간 알았지요.
세상에, 제가 그 집에 가서 하는 일이란 게 그리 복잡하냐 하면
딱 두 가지 일밖에 없습니다,
복사와 프린터.
그것도 해주는 것 받아 돈 주고 나오는 일이지요.
끝자리라도 껴 있어 계산이 복잡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복사비 30원, 프린터값 50원!
세상에 그걸 지난 2년도 넘어 세해 째 묻고 있었던 겁니다,
잊을 만치 아주 듬성듬성 가는 것도 아니면서.
순간 자신이 관심 없는 일에
얼마나 지독하게 신경줄을 놓는가를 본 거지요.
사십 년을 넘어 살아도 자신의 어떤 면을 또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긴긴 세월을 살아가는 갑다 싶어요,
새로운 맛에.

포트에 수세미 가지 오이 호박을 심어
책방의 마당 쪽 현관에 늘여두었습니다,
물 담뿍 주어.
자잘한 봄농사를 밭에서 포트에서 하고 있지요.

나무날 저녁이면 바깥 장을 봐 옵니다.
이제는 하나로의 손영현 상무님도 기억하셔서
아예 나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늘처럼 요긴한 것들을 챙겨주시지요.
오늘은 식구들을 위한 주전부리까지 실어주셨습니다.
덕분에 모여들 곡주 한 잔한 밤이랍니다.

주에 한 차례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몇 주 전 단지 저시력 장애인 친구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것도 그가 점자를 가르쳐주겠다며 영어를 좀 가르쳐달라 한 부탁으로)
수업을 한 그 친구의 반응이 좋더니 어째 소문을 듣고
하나가 왔고 또 하나가 왔고 또 다른 이가 찾아왔더랍니다.
발음기호 하나 못 읽는데
늘 하는 영어는 벌써 저만큼 진도가 나가 있고
그러니 계속 모르고 알 기회를 놓치고
그렇게 언제나 스트레스만 받고 해결할 길이 없더니
속이 다 시원하다고, 고맙다고들 수업한 소감을 전하였지요.
역시 아는 것과 가르치는 건 다른가 봅니다.
저 역시 영어가 원활치 않은데
그들에게 도움이라 하니 좋지요,
선생에게 그만한 기쁨이 어딨겠는지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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