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21.불날. 바람 불고 간간이 빗방울 흩뿌리다

조회 수 1331 추천 수 0 2009.05.07 11:46:00

2009. 4.21.불날. 바람 불고 간간이 빗방울 흩뿌리다


아침, 발아래 성큼 다가선 산입니다.
멀리 있던 산이 마을로 그리 내려서는 계절,
봄이 여름을 부르는 즈음이지요.
구름 속에 있던 아침 햇살이 잠시 나타나
한 공간씩 조명 비추고 다시 사라집니다.
그리고 종일 간간이 빗방울 흩뿌리고
그 사이 사이로 바람이 훑고 다녔지요.
멀리 있는 그리운 이에게
(산골에 살면 사-람-이 그립지요)
산골 소식을 전하며 아침을 엽니다.

논둑에서 달골 밭가에서 두릅을 따고
아침 저녁 표고를 땄습니다.
참 잘도 생긴 화고!
생명 왕성한 것들이 그러하듯
하얀 속살이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표고는 넷으로 구분한다 물꼬요새에 쓴 적 있지요.
육질이 두꺼우며
갓이 거의 펴지지 않고 모양이 거북등처럼 갈라진 곳으로 하얀 부분이 보이는,
바로 ‘화고(화동고라고도 하는)’를 으뜸으로 칩니다.
표고를 따던 첫해 그 예쁜 걸 안고
마치 갓 태어난 아이를 들여다보듯
마냥 신기하고 고와서 어쩔 줄 몰라 했더랬습니다.
‘동고’는 갓의 펴짐 정도가 50%이하로
반구형 갓의 끝부분이 충분히 말려 있지요.
이 역시 육질이 두껍고
갓 표면에 균열이 조금 있으면서 주름살은 별로 없습니다.
‘향고’는 반구형 혹은 타원형으로 펴짐 정도가 60%정도라 하니
동고와 향신의 중간정도이지요.
‘향신’은 아무래도 하품으로 치는데
펴짐 정도가 80% 이상일 때입니다.
많이 펴진 만큼 육질 또한 얇습니다.

도저히 시간을 빼기가 어려운 일들이 겹쳐 있습니다.
두어 시간씩 자며 일을 보고 있는 한 주이지요.
그런데 그제 아이의 이를 받치고 있는 철사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도 에미 사정을 아는 지라
정말 미안한데, 어쩌지, 하며 움직임을 걱정했지요.
뭘 어쩌겠는지요, 대전으로 나가야지.
그런데 언제 어찌 시간을 뺀단 말입니까.
헌데 마침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선배랑 통화를 하던 중
그가 소식 듣고 손을 좀 보탤까 합니다.
“네가 힘든 건 세월이 지나도 똑 같으니...”
오랜 세월을 곁에서 살아온 선배가 그러데요.
“형이 아무래도 전생에 내게 빚이 많았나 부다.”
낼 짬을 내 아이를 실어갔다 실어다 준다 합니다.
그런 그늘들로 늘 물꼬 삶이 이어진다지요.

아이랑 함께 걷는 봄길, 참 좋습니다.
오늘은 그런 얘기들을 나누었지요.
“어느 날 새로운 깨달음을 위해 길을 떠날 수도 있겠다.”
아이가 얼른 말을 받았습니다.
“엄마, 그러지마. 나는 엄마가 그러지 않을 걸 믿어,
날 사랑하니까.”
그리고 덧붙이데요.
“그러면 난 엄마를 찾아다니는데 삶을 다 보낼 거야.”
그래서 당분간 그러지 않기로 했답니다, 하하.

4월 21일, 2004년 상설학교로 문을 열었던 날입니다.
해마다 ‘학교문연날잔치’를 했더랬지요.
“그 덕에 한 해 한 번은 물꼬 갔는데...”
올해부터는 그 힘을 나누어
대신 작은 모임(‘빈들모임’)으로 달마다 자리를 마련한다 하자
그래도 아쉬워라 여러 분이 전화 주셨습니다.
학교문연날잔치는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이곳은 여전히
아이들의 학교이고 어른의 학교랍니다.
500여 명도 넘게 모였던 문을 열던 날부터
다섯 차례 몇 백 명이 이 산골 들썩였던 시간들에
먼 길 단숨에 달려와 함께 했던 모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지키며 살아가겠습니다,
어느 때고 걸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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