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빈들 이튿날 / 2009. 4.25.흙날. 비 오다가다

조회 수 1196 추천 수 0 2009.05.10 23:42:00

4월 빈들 이튿날 / 2009. 4.25.흙날. 비 오다가다


7시 해건지기 수련으로 아침을 엽니다.
어른들 틈으로 아이들 뛰어다니고 있었지요.
그러다 저들도 어느새 자리 잡고 몸을 움직여봅니다.

하늘이 축축합니다.
덕분에 느긋한 아침이 좋습니다.
밥상을 물리고 차를 오래 마셨지요.

마침 비 주춤거립니다.
나가 보라네요.
곶감집 뒤란엔 두어 해 묵힌 밭이 있지요.
올 봄에는 그곳도 일궈두었는데
거기 너른 잎사구 나고 있기 무언가 했지요.
“케일이나 배추 종류 아닐까...”
그 배추 뜯어다 김치라도 담을까 하다
뭔가 좀 더 두고 보자 했더랬지요.
우엉이데요.
그제야 한참 전 그 밭에 놓았던 우엉이 생각났지요.
잎은 토란잎같이 넓었습니다.

호미나 괭이 삽을 들고 줄지어 올라갔습니다.
하늘 구름 걷히고 있었고
고개 들어 본 먼 산이 성큼 들어와
우리 모두 잠시 숨을 멎게 하였습니다.
밭가에서 아녀자들은 머위를 뜯고
더러는 퍼드득나물을 뜯었습니다.
황매화가 젖은 들에서 어찌 그리 환하게 웃고 있던지요.
안성만님은 어린 아내의 머리에
그 황매화를 꺾어 꽂아주었습니다.
“좋겄네, 누구는!”
“그런 신랑 있어 좋겠네.”
“나도 신랑 있거든!”
부러움으로 한마디씩 던졌더랬지요.

칡이 따로 없습니다.
마른 흙이었더라면 얼마나 고생들을 했을지요.
혹여 뿌리가 끊어질 새라 깊이 깊이 팠습니다.
아이들이 더 신이 났지요.
류옥하다는 아주 땀을 비오듯 내리고 있었습니다.
호성샘은 그 모습을 열심히 사진기에 담았지요.
그러니까 사진이 없는 부분은
호성샘이 같이 뛰어들어 일을 했기 때문이라지요.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며
아예 사진을 맡길 것 그랬다 후회가 됩디다.
그리 사진 잘 찍는 줄 몰랐지요.

돌아와 우엉을 죄 다듬고 씻고
오후엔 그걸로 김정희님 김현정님 문수현님이
요리를 맡기로 하였습니다.
머위는 데치고 무쳤지요.
낼 집집이 나눠서 싸갈 참이랍니다.

점심을 먹고는 고래방에 모였네요.
‘우리소리 우리가락’입니다.
“봄 봄 봄 봄에 봄봄 간지럼 태우는 봄~”
갑돌이 하고 갑순이 하고 지게지고 바구니 끼고 간
들풍경 산풍경 담긴 봄타령도 익히고
풍물도 익혔습니다.
처음 해본다더니 가락을 금새들 익혀
공연 한 판 하였더라지요.
그때 안동에서 집 지으러 가있는 목수샘도 오고
박성호님 네 식구가 들어서서
한바탕 잘 놀았더랍니다.

늦은 오후는 비오는 날 빈대떡이라고
안성만님이 굽는 호떡 앞으로 모다 모였지요.
아, 파는 호떡이 아니고는
그렇게 잘 생기고 맛난 호떡 첨 보았습니다.
모두 입이 벌어졌지요.
계자 때마다 먹던 그 딱딱한 호떡만 봤던 우리에겐
탄성이 절로 나오게 했다마다요.
“저러니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게야.”
재료도 다 준비해서 온 기랑이네였지요.
소백산 아래서 그걸로 도 닦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한 켠에선 정영학님이 열심히 우엉을 두들기고
엄마들이 우엉요리 해내고 있었지요.

무주에서 넘어왔던 이현승님 돌아갈 일이 생겼습니다.
명학이랑 마당가에서 나눈 이야기가 깊었는데,
이제 좀 낯이 익었는데...
하다 또래여서 관심 더 갔더랬지요.
명학이가 몸이 좋지 않은 데 무리하게 와 힘들어하던 참이었습니다.
차로 넘어가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데
아고, 돌아 돌아가려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나요.
그래서 낼 거기 실어다 줄까 그러던 참이었는데
저녁 버스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곧 다시 보기로 했지요.
저녁을 먹고는 부산 미성이네도 먼저 일어섰습니다.
낼 새벽에 나가려던 걸음인데,
미리 하는 연등행렬따라 한참을 걸을 일이 걱정이어
아무래도 무리겠다 싶어 저녁에 출발하였답니다.
미성이 데리고 한동안 물꼬 그늘에 와서 지내보면 어떨까 하지요.
고민해보라 하였습니다.

저녁을 먹고는 달골 올랐습니다.
오늘은 절기따라 청명춤을 추었습니다.
손이 서로 닳을락 말락한 아쉬움이
마음에도 오래들 남더라나요.
강강술래로 또 한 판 놀고
아이들과 대동놀이도 하였답니다.
닭들이 바글대고 흥부놀부 처자식들이 노는 놀이마당이었지요.
난로를 피우고 고구마 익을 동안
고구마와 효소와 두부김치와 막걸리 푸지게 올랐고
은행도 구웠습니다.

안동식구들도 서둘러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비 멎으면 할 농사일이 사람들과 함께 기다리는데,
이런 비가 멎고 있네요.
또 오면 되지 하고 한 밤에 떠났답니다.

아이들이 잠자리로 가고
어른들은 고운 노래 몇 가락 읊조린 뒤
이야기마당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물꼬의 앞으로의 날들이 궁금탑니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도 나누고
한발 한 발 나아가는 삶에 대해 전하였지요.
물꼬 홈페이지를 공부하고 온 안성만님으로
우리는 물꼬의 여러 지나간 시간들도 되짚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삶터에서의 고민들도 편하게 털고
서로 머리 맞대보기도 했네요.
틀림없는 건
그런 속에도 아이들이 성큼성큼 자라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열심히 살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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