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30.나무날. 맑음

조회 수 1030 추천 수 0 2009.05.12 06:32:00

2009. 4.30.나무날. 맑음


고추밭에 지줏대를 준비해두는 사이
농기계집은 드디어 갈무리가 되었습니다.
“상량식해야는데...”
제대로 갖춰지지도 못한 연장으로
그리고 재료들을 예제 긁어모아 하다 보니
길이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이어붙이고 하는 동안
꼬박 사흘이 흘렀더랍니다.
늦은 오후 막걸리 한 사발들 하였지요.
어찌나 실허게 세웠던지요...

채식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요새 바깥에서 하는 제 일을 도와주는 친구들입니다.
좋은 밥으로 인사하고 싶었지요.
채식요리연구가 이윤옥샘은
두개장을 실어 보내주셨습니다, 식구들을 위해.

밤엔 오랜 벗들이 왔습니다.
물꼬 논두렁에 콩 심는 이들이기도 하지요.
아침이면 다시 일터로 갈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호주에서 공부를 했던 한 친구는
정작 우리가 시드니에 머물 땐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리고는 간간이 소식만 전하다 오늘에야 얼굴 보게 되었습니다.
먼 이국에서 홀로 공부하며도
빠듯한 살림으로 해마다 물꼬 살림까지 살펴주었던 그니입니다.
어느새 이십년이 더 넘어되게 시간이 우리 사이를 흘렀네요.
대전의 선배도 건너옵니다.
물론 그 역시 물꼬의 큰 논두렁이지요.
지난 스무 해를 넘게 그리 살아준 그들이 고맙습니다.
한편 서로 말이 된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말이 되는 이들이 만나는 즐거움을 준 것도
그들과 함께 한 세월이었습니다.

“네비 있다더만...”
이 어둑한 산골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걸까요,
한참을 전화 연락도 안 되던 벗의 차는
학교 뒤란 언덕아래서 겨우 연결이 되었습니다.
하필 전화도 터지지 않는 엘지였던 겁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수신이 잘 안 되는 엘지 말입니다.
그래서 미선샘도 쓰지 못하고 있는 그 전화.
한 번 만나는 일이 이리 사연 길다니까요.
날 밝도록 얘기 또한 그리 길었습니다.
밤새 술로 채우던 우리들의 젊은 날을 되짚으며
이제 차(茶)를 놓고도 밤을 지새게 되네요.
나이들을 먹은 게지요, 아님 시대가 변했나...
따사로운 밤이었습니다.
늘 하는 생각입니다만,
서로 뭘 돕지 못해도 잘 살아주는 것만도 또한 도움일 겝니다.
서로 잘 살아주어 고마웠고
거기에 물꼬까지 살펴주어 더욱 고마웠지요.
이럴 때 행-복-하다고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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