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원서 받는 풍경 - 둘

조회 수 2163 추천 수 0 2003.12.20 14:28:00

주로 주말을 중심으로 하루 너댓 가정씩 입학면담을 하고 있습니다.
평일엔 부모님들이 따로 밥당번을 하러 내려오시기도 하구요.
먼저 보내온 원서를 중앙위원 셋이 읽고
면담은 교장샘이 혼자 합니다.
그날 저녁 다시 중앙위원들이 모여 결과를 나누게 되지요.
면담은 두 시간여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교육관이란 게 뭐라고 포장되더라도
정작 살아온 날들에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던가요.
그래서 정작 교육에 대해서보다
살아온 날들에 있었던 일을 통해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고 기억하는가,
그런 것을 중심으로 얘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근히 자존심을 긁어볼 때도 있고
부부사이까지도 어렵게 건드려보기도 하지요.
때론 아주 긴장을 하고 들어서시는 아버님도 계시고
망설이다 망설이다 속내를 결국 다 드러내며 우는 분도 계시고
두 분이 끝내 말다툼을 하시기도 하고...

되돌려보내지는 원서도 있습니다, '빠꾸'말입니다.
이건 이력서가 아니니까요.
몇 년에 뭘 했다, 단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특히 살아온 날에 대한 기록은 꼼꼼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어떤 아버님은
처첩관계가 복잡했던 할아버지 세대에서부터 아들에 이르기까지
전 가계사를 적어보내기도 하시구요,
한자 한자 얼마나 공을 들여 쓰셨던지
(아시지요, 이게 무슨 글솜씨를 말하는 건 아니란 걸)
읽고 있으면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결국 아이 입학을 놓고
우리 삶에 대한 돌아보기를 하는 거지요.
늘 문제는 우리 어른들이니까.
자기의 치부까지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그 겸손함이 아이를 이곳에 맡길 수 있는 마음이겠습니다.

더러 어떤 부모님은 기백만원의 후원금을 내겠다고 합니다.
물꼬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하지요.
옵션이라하나요, 그런 걸?
그런데 그런 옵션이 바로 물꼬에서는 옵션일 수 없다는 것,
그게 정녕 물꼬의 매력 아니겠는지요.
그런 조건을 저버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저는 물꼬가 참말 좋습니다.

인석 효석의 어머니 아버지의 방문 뒤로
부모님들이 입학면담을 하면서 공동체 식구들 밥을 해대고 계십니다.
"가서 푸더덕거리지말고 하루 일찍 내려가."
도형이네 아버지는 그러셨답니다.
그래서 도형이랑 어머니는
그 전날 와서 삼시 세 때 밥상을 차리고
하루 묵은 뒤 그 다음날 떠나셨습니다.
도형이는 떨구고 가라 하였지요.
황간의 정근이네는 아버지가 세 끼 밥을 아예 다 준비해와서
끓이기만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정원을 스물로 잡아두고서
생각이 서로 맞지 않는다면 굳이 그 정원을 마음에 둘 필요가 있겠는가,
다섯만 데리고도 학교를 시작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 안내하는날 참가한 가정들만 봐도
무려 서른 아이가 넘습니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이 입학원서를 내고 있구요.
그날 오지 못했거나 그 뒤에야 소식을 들은 가정들은
일단 올해는 연이 안된다 거절하고서도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놀랬지요.
정말 이리 많을 줄 몰랐습니다.
어디처럼 차마 추첨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정원보다 많은 이들을 어떤 방법으로 교통정리 해야 하는지
지혜가 필요한 지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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