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3.해날. 맑음

조회 수 1061 추천 수 0 2009.05.13 10:43:00

2009. 5. 3.해날. 맑음


느긋한 아침을 먹고 형환샘이 흘목까지 걸어나가
미선샘 배웅을 받으며 떠나고,
양양에서 야삼경에 돌아온 이들은
늦도록 잠자리에 있었습니다.
점심 밥상에서야 식구들이 모여
양양에서 실어온 것들 꺼내
다녀온 얘기 나누며 앉았더랬지요.
“더덕을 효소를 담은 뒤 건져
고추장에 박아놓으니 정말 맛있데.”
무운샘을 뵙고 오면 산골살이가 훨 풍성해지는 듯하지요.
올해 산에 들어 캐는 더덕들은
그렇게 효소를 다 담자 합니다.

오후에는 산에 들어갔습니다.
하늘 좋고 볕도 좋습니다.
4월부터 나오는 취나물인데,
벌써 마을 할머니들은 고사리며 취나물 한번 따 내렸을 것인데,
이제야 짬을 내 들어갑니다.
티벳길을 따라 걷다 숲으로 들고
무덤가를 중심으로 볕바른 곳들부터 따 들어갔지요.
소나무 숲을 지나 대해못 넘어가는 곳까지 훑습니다.
둥글레들이 하얀 꽃망울을 대롱대로 매달고 있었습니다.
곧 피어오르겠네요.
올 여름엔 그들이 많습니다.
해마다 산을 들어도 해마다 다릅니다.
어느 해는 어떤 녀석들이 주류를 이루고
이듬해는 다른 이들이 기세등등하지요.
자연스러운 일들입니다.

퍽 덥데요.
죽은자의 집은 늘 산자의 좋은 쉼터이지요.
그늘 내린 곳에 앉아 물을 마시고
먼 하늘 먼 산 바라봅니다.
“다 쇘네.”
“아고 아까워라.”
고사리들은 벌써 훌쩍 자라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여린 순이 없잖습니다.
고사리를 뜯고 있으면 꼭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보이기 시작하면 그 옆으로 다른 놈이, 또 다른 놈이...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신나게 손놀림을 하지요.
“어릴 때 산을 헤매보고는...”
영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선샘은
그 뒤로 이리 다니기 첨이라 합니다.

주말이면 약속 없이 찾아오는 이들이 꼭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다른 동네 소식을 듣게 되고는 하지요.
해거름 녘에 대안학교 만들려는 이들이 다녀갔지요.
막 일 좀 해야지 하고 차를 마신 뒤 교무실로 가려 일어서는데
가마솥방문을 기웃거리다 불쑥 들어들 왔지요.
아고, 오늘도 교무실 일 걸렀네 싶었습니다.
대전의 다른 대안학교에서 일한 적도 있다는 그는
가족이 다 교사였는데 지금은 학교들을 그만두고
그렇게 다니며 새로운 학교터를 찾고 있다지요.
왜들 그리 어려운 길을 가시려는지,
먼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의 대안학교 흐름에 긍정적이지 못해 그럴 테지요.
아무쪼록 그 길이 즐겁기를 바랍니다.
대단한 무엇을 하는 길이 아니라
그저 어른들이 먼저 유쾌하고 뜻있게 사는 삶의 길이길 바라지요.

소사아저씨는 뒤란 가마솥에게 집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남도의 집안 어르신 댁에서 가마솥을 가져온 지 오래이지요.
거기 시래기국을 끓여 잔치를 했고
멸젓국을 달여내 때마다 먹으며
콩을 삶아내 두부를 만들고 메주를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오실적마다
잘 닦아두라거나 지붕을 만들어 두라
집 떠난 그 가마솥을 여전히 사랑하셨지요.
그 마음을 헤아려
며칠 전부터 골똘히 고민하고 가마솥 둘레를 정리하던 소사아저씨는
벽을 한 번 쌓아본다 하십니다,
아니면 허물면 된다시며.
어르신들 말씀을 담아두었다 그리 챙기시는 것이 고마웠지요.

논물을 대는 이즈음입니다.
물길도 살펴두고
물꼬를 정비하지요.
모내기를 할 때까지 그리 살펴줄 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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