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8.쇠날. 맑음

조회 수 1126 추천 수 0 2009.05.14 08:52:00

2009. 5. 8.쇠날. 맑음


검은등뻐꾸기가 밤에도 아니 자고 저리 웁니다.
달빛 곱게 내리는 밤입니다.
봄 햇살처럼 어깨에 닿는 달빛 아래
아이랑 마당을 거닐었습니다, 도란거리며.

오후엔 멸가치를 땄습니다.
“뭐 하는 겨?”
“우리 동네는 그거 안 먹어.”
“요새 누가 그런 걸 먹나?”
혹 미선샘이 잘 몰라 그러는 줄 알고
오며 가며 어르신들 다 한 마디 하셨지요.
그걸 좀 데쳐봅니다.
쓴 맛이 강하네요.
아무래도 손이 잘 안가겄습니다.
한 2킬로는 되는데,
효소를 담아야겠습니다.
만만한 게 효소라지요.
열무도 솎아냅니다.
올 첫 열무입니다.
김치를 담지요.

오후에 있었던 약속이 늦어져
덕분에 물가에서 세차를 합니다.
“차는 닦는 게 아니야.”
선배의 말을 위로삼아 늘 산골 차가 트럭이려니 하고 살지요.
송화가루 내려앉아 이젠 좀 닦아야지 하던 참에
또 이리 짬이 나 줍니다.
힘 좋은 아이가 단단히 한 몫을 하지요.
이 아이를 너무 기대고 사는 건 아닌가
자주 흠칫하고는 합니다.
헐렁한 엄마를 만나니 그걸 또 채워주는 아이이지요.
해거름에 황간에 갑니다.
언젠가 낚시를 간 적이 있는 골짝 저수지 가는 길이었지요.
언제 또 가나 싶은 곳들도 그리 만나는 날이 있습디다.
사람 연도 그러할 테지요.
그런데 길을 잡아준 아저씨가 내민 명함,
유기농을 공급한다 적혀있습니다.
“한해 20억 정도 해요.”
그런데 그가 하는 말 좀 들어보셔요.
“유기농이 어딨어요? 그거 안돼요.”
안된다고 믿는 이가 안 된다는 그걸 한다고 명함을 내밀고
그걸로 장사를 하고 한 해 20억 물건을 판답니다,
아고...
밭주인이 사다리에 올라 감 따는 갈고리로 가죽을 긁고
그걸 아래서 아이랑 콘티에 주워 담습니다.
“남자 있어요(같이 와요)?”
“아니요, 그냥 아이랑...”
하니 사다리까지 챙겨와 준 주인이지요.
그런데 향이 참 강합니다, 속이 울렁거릴 만큼,
장아찌로 담아준 걸 먹을 땐 여태 몰랐는데.
어릴 적부터 비위가 약하여 어른들을 속깨나 썩였는데
커도 별반 달라지지 않습니다.
단식을 통해서도 몸을 여러 번 바꿔보겠다 했으나
여간해서 변할 수 없나 봅니다.
두 콘티 가득 채워 한 콘티는 주인 트럭에 실어주고
우리 한 콘티 실어왔지요.
“더 가져가요.”
“아뇨, 한 콘티만도 내년까지 먹겠어요.”
가마솥방 안에 두니 안에서 그 향 더 진하여
다른 식구들이 다듬어주었지요.
서둘러 뭐든 요리해야겠습니다.

어버이날입니다.
두 분 은사님께 달랑 문자 보냅니다.
“선생님은 제게 큰 스승이면서 부모님.
제게 좋은 성품이 있다면 샘으로부터 배운 것.”
그리고 저녁에 두 분의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 끊고 한 분은 답문자까지 넣어주셨습니다.
“항상 마음뿐 미안함이 가득하단다
옥교장 힘들제 부디 건강유의하고
원하는 학교운영발전을 기원한다
고마워 보고 싶다.”
정년퇴임하신 당신은
울 이모부가 근무하던 학교에 함께 계시던 시절부터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마흔 훌쩍 넘어 이르는 이 나이까지
부모님과 다르지 않은 길라잡이 돼주고 계시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당신들 발치라도 이르는 선생일 수 있기를...

아, 낼은 봄학기 산오름 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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