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20.물날. 꾸물럭거리는

조회 수 943 추천 수 0 2009.06.06 01:54:00

2009. 5.20.물날. 꾸물럭거리는


아침, 드디어 쓰러졌습니다.
픽 넘어졌다는 말은 아니구요,
잠자리에서 못 일어난 게지요.
주말을 거의 쉬지 못한 채 세달 가까이 보내고 있었더니
잠시 여유로운 물날의 오전,
아이랑 해야 하는 공부시간을 밀치고
아주 구들더께 되었더랍니다.
느지막히 몸을 추스르고 마당에 내려섰는데,
아이가 불렀습니다.
“아,...”
아이 손을 잡고 들어간 가마솥방 중심 식탁에 파이접시 놓였는데,
파이 아래 돌단풍이 깔리고
위로는 토끼풀과 아카시아 꽃이 곱게도 장식되어 있었지요.
아침을 거른 어미를 위한 간단한 밥상이었습니다.
이래서 자식 키우나 싶더라니까요.

부엌에는 미선샘이 서울 올라가기 전 챙겨둔
아카시아, 뽕잎, 머위들이 바구니마다 그득그득했습니다.
효소단지를 채울 것들이지요.
몸을 좀 움직입니다.
식구들은 논에 가 있었지요.
논둑에 뽕나무도 베어내 버리고
한껏 자라난 풀도 베 내고
논에 거름도 뿌리지요.
아이도 논에 나가 거름 포대를 짊어지고
어른들을 도와 땀 뻘뻘 흘리며 일을 합니다.
잠시라도 식구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아이인지요.

무엇을 할 거라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이룰 거라는 것보다
생을 하루하루 어떻게 채워가는가가 더욱 중요하지요.
생각하고
그리고 그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
그거 하고 싶었고,
비로소 이 산골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현재’입니다.
아카시아 꽃 다 흩날려 내리기 전
그것도 좀 더 따서 효소항아리 넣으려 옴작거립니다.

저녁답에는 대문 앞 풀들을 좀 잡았습니다.
쑥대머리 꼴이 따로 없는
대문 앞 화단이었지요.
들어서는 대문 안쪽 양 옆으로도
아니, 풀들이 언제 저리 키가 훌쩍 자랐답니까.
낫질 호미질을 좀 합니다.
다른 일을 하고 들어서든 식구들도 잠시 붙어서 같이들 했지요.
논일이며 바깥일 오가느라 금새 흙바닥이 된 부엌바닥도
주말까지 그 꼴 보지 못하고 닦아내기 시작했답니다.
개운한 밤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6598 2024. 3. 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3-28 446
6597 2024. 3. 6.물날. 흐림 옥영경 2024-03-28 446
6596 2024. 3. 5.불날. 비 그치다 / 경칩, 그리고 ‘첫걸음 예(禮)’ 옥영경 2024-03-27 436
6595 2024. 2.11.해날 ~ 3. 4.달날 /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24-02-13 741
6594 2024. 2.10.해날. 힘찬 해 / 설 옥영경 2024-02-13 533
6593 2024. 2. 8~9.나무~쇠날. 맑음 옥영경 2024-02-13 479
6592 2024. 2. 7.물날. 어렴풋한 해 옥영경 2024-02-13 480
6591 2023학년도 2월 실타래학교(2.3~6) 갈무리글 옥영경 2024-02-13 430
6590 실타래학교 닫는 날, 2024. 2. 6.불날. 비, 그리고 밤눈 옥영경 2024-02-13 497
6589 실타래학교 사흗날, 2024. 2. 5.달날. 서설(瑞雪) 옥영경 2024-02-13 443
6588 실타래학교 이튿날, 2024. 2. 4.해날. 갬 / 상주 여행 옥영경 2024-02-11 456
6587 실타래학교 여는 날, 2024. 2. 3.흙날. 저녁비 옥영경 2024-02-11 444
6586 2024. 2. 2.쇠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443
6585 2024. 2.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457
6584 2024. 1.31.물날. 안개 내린 것 같았던 미세먼지 / 국립세종수목원 옥영경 2024-02-11 444
6583 2024. 1.30.불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445
6582 2024. 1.29.달날. 맑음 / 그대에게 옥영경 2024-02-11 409
6581 2024. 1.28.해날. 구름 좀 옥영경 2024-02-11 420
6580 2024. 1.27.흙날. 흐림 / 과거를 바꾸는 법 옥영경 2024-02-08 456
6579 2024. 1.26.쇠날. 맑음 / '1001' 옥영경 2024-02-08 46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