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8.달날. 약간 흐림

조회 수 896 추천 수 0 2009.06.22 00:28:00

2009. 6. 8.달날. 약간 흐림


밤마다 논물을 보는 날들입니다.
모가 더디게 자라 애가 좀 탄다지요.

한 주 뒤에 돌아오마 하고
새벽부터 머물던 식구 하나 먼 길을 갔습니다.
목수샘도 다시 안동행에다
다른 식구 하나도 서울에 있어 텅 빈 아침인데도
여전히 부산하였네요.
샌드위치 30여 명이 먹을 분량을 준비할 일이 있었지요.
학기 마지막 영어수업 시연이었습니다.
양배추, 오이, 토마토, .... 그리고 치즈,
아, 치즈!
한동안 어르신 하나가 치즈를 공급하셔서
산골 온 식구 뿐 아니라 두루 잘 나누어 먹어왔지요.
최근에 뵙지 못했다는 걸
냉장고에 빈 치즈 칸으로 알아차렸더랍니다.
고마움의 속성은
그것이 마음 안에 오래 산다는 것 아닐지요.
또 고마웠더랬습니다.

읍내를 다녀오는데
아이가 좇아 나와 대문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알았어?”
“차 소리가 나잖아.”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마을로 들어오는 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계자를 시작하면 안에서 움직이던 손들도
바로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들어왔음을 알고는
좇아 나와 대문에서 그들을 맞지요.
그런데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야?”
“여기 다 쓸었지.”
교문에 놓인 대빗자루가 보였지요.
“몰랐어?”
“그러게...”
“엄마, 감각은 내 자신하고 좀 다른 것 같애.
우리가 불에 손을 대면 뜨거워 손이 확 튀어나가잖아.
그건 내가 의도해서 그런 게 아니지?
그러니까 감각은 내 마음과 다르다는 거야.
내가 오늘 마당을 쓸어놨잖아.
근데 엄마가 못 느꼈다고 했잖아.
근데 엄마의 감각은 그걸 느끼고 행복했을 거야.
엄마가 기분이 좀 더 좋아졌을 거야.”
그래서 그리 좋았던 걸까요...

저녁답에 연에다 물을 넣었습니다.
간장집 부엌에서 쓰는 물이 흘러
고이는 통이 있습니다.
거기 자연정화를 위해 연을 심어놓았지요.
언젠가 양양의 무운샘이 나눠주신 것입니다.
요샌 주로 달골에서 기거하니
거기 물 마른지 오래였네요.
그런데도 질기게 살아가고 있는 연이었습니다.
말려있던 잎이 다시 환하게 펴지고 있었지요.

저녁을 먹고 해가 진,
그러나 아직 훤한 저녁마당에 나갔습니다.
한낮의 더위에 숨죽이던 것들이 거니는 시간입니다.
춤을 춥니다, 온갖 존재들이 쏟아져나와.
보리수 빠알간 열매와 그만큼 또 빨간 앵두알을 따먹고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엄마, 엄마, 부르며
새로 배운 기술 자전거 보여주고 있었지요.
“엄마!”
엄마, 그 소리 참 좋습니다.
‘무식한 울엄마’는 잘 계시려나...
오늘 전화 넣어야겠습니다.

반가운 소식 하나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공모전이 있었는데,
발표일도 지난 터라 잊고 있었는데,
오늘 연락이 왔네요.
대상이랍니다.
뜻하게 않게 생긴 상금을
같이 공부하고 있는 곳의 학생모임에 기탁키로 했지요.
어차피 내 경제 규모에 있던 돈이 아녔으니
없던 돈이려니 하고 잘 나누었습니다.
가난한 산골살이에도 다른 이와 나눌 것들이 생겨
고맙다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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