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9.불날. 맑음

조회 수 1116 추천 수 0 2009.06.22 16:31:00

2009. 6. 9.불날. 맑음


학교 큰 마당엔 작은 연못 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작은 연못이지요.
거기 비 내리고 자잘한 풀 자라고
개구리 더러 뛰어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랜 가뭄은 거기라고 다르지 않았지요.
여름 왔고, 못도 녹음이면 좋겠더이다.
연못 청소를 하고 물을 다시 채웠지요.
EM공을 뭉쳐 넣어둘 생각입니다.
고여 있는 물도 썩지 않게 하는 방법 하나이지요.
학교 바깥으로 둘러친 언덕 아래 수로도
풀들을 정리합니다.
장마 맞을 채비라지요.

지난 달에 특강을 갔던 수업에서
학생들이 쓴 소감문을 오늘 담당 교수님이 들려주셨습니다.
메일로 몇 편 보내주셔도 될 것을
굳이 읽어주셨지요.
드물게 진지하게 듣고
자기 삶에 던져준 것들을 잘 잡아 쓴 학생들이 기특하데요,
물론 그런 글들을 당연 읽어주셨을 테지만.
여전히 이 시대에도 분명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의 피가 얼마나 뜨거워야 하는가에 대해
말했던 날이었습니다.
젊은 날의 높은 꿈,
그들이 지닌 것이지요.
그 높은 꿈이 훗날의 삶에서도 자랑스럽기를...

한 벗이 왔습니다.
마침 식구들이 이러저러 마을을 나간
호젓한 물꼬를 채워주러 왔지요.
차에 내려서며
마당가 붉은 앵두와 볼똥부터 따먹습니다.
그럴 수 없이 풍성한 이곳이라지요.

젖은 저녁입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옥샘 곁에서 서성이는 나는
맛난 음식을 요리하는 엄마 곁에서 양념 심부름하며
왠지 모를 행복감에 철없이 조잘대는 어린아이’ 같았다는 벗입니다.
텃밭에서 상추도 뜯어오고
장독에서 새 된장도 떠오고...
밥을 먹고 마당에 내려섰지요.
걸었습니다.
“좋지요?”
“좋네요.”
여름 저녁이 물고온 단내에 흠뻑 취합니다.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흥얼거리는 벗의 노래를 뒤로
얼른 가마솥방에 들어 피아노를 칩니다.
곧 그가 들어와 같이 노래 불렀지요.
아름다운 저녁입니다.
평화로운 저녁입니다.

비 온다고 데워놓은 구들에
두 다리 뻗고 온 몸에 긴장 푼 채
오래도록 도란거렸습니다.
물꼬가 하는 순기능 하나이겠지요.
쉼이 필요한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잘 쓰이니 고마울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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