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30.불날. 흐린 하늘 간간이 빗방울

조회 수 981 추천 수 0 2009.07.10 17:33:00

2009. 6.30.불날. 흐린 하늘 간간이 빗방울


원추리 폈데요, 마당 꽃밭에.
한 해의 절반이 갑니다.

읍내에서 무용단 사람 하나를 만나기로 하였는데
갑자기 생긴 일로 미뤄졌지요.
뜻하지 않은 짬이 생겨 아주 가끔 들러보는 절집을 향했습니다,
영화 한 편을 생각하면서.
그런데 마침 라디오에서 바로 그 영화 <동승>을 담고 있었지요.
도라지꽃 필 때가 아니면 무슨(?) 꽃이 필 때 오겠네,
그렇게 엄마를 기다리던 동승...
첨엔 길가 자두, 포도, 띄엄띄엄 집과 수로와 작은 개울,
그리고 언덕빼기가 보이다가
절에 가까울수록 나중엔 길만 보입니다.
마치 무수한 가지 길들을 쳐낸 뒤 어떤 목표에 이르는 것처럼.
대웅전에 깃들어 마음 쉬다 나왔지요.
주로 지리산에 계시는 이 절의 주인어르신은
상설학교로 문 열던 그 해 큰 도움을 주셨더랬습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인연이었는데,
한 날 발길 닿아 찾아간 그 절에서 차를 마시고 나오는 걸음 뒤로
건네주셨던 것이었지요.
선뜻 내미신 봉투를 받고 의아했으며 당혹스러웠고
이어 고맙고 그리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그랬답니다.
“공양하고 가세요.”
보살님들이 부르데요.
“아니요...”
느리게 걸어 나왔지요.
다시 절을 향해 뒤돌아섰는데,
문득 드는 생각,
모든 사물은 그림자로도 말을 한다 싶더이다.
거기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데요.

생의 복병들, 어디 한둘이던가요.
걱정 할 일 하나도 없던 일이
어느새 골치 아픈 일이 된 것입니다.
기간 안에 제출해야할 과제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런, 제출이 처리되지 않은 채 그 건에 대한 결과물이 오늘 나왔습니다.
중간에 여러 번 보낸 메일이 열렸나 확인을 하였는데,
번번이 읽히지 않은 걸로 나오기는 했지요.
하지만 담당자를 귀찮게 하는 것만 같아
딴에는 그를 배려한다고 이제자 저제나 하며 바라만보고 있었더랬지요.
그래요, 때로 지나치게 배려할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한 것은 인정이 되었으니 그나마 고마울 일인데,
문제는 그 결과를 산출하는 데 있어
절대평가여 한 사람이 앞자리로 가면
다른 사람들이 줄줄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요.
그 짓 못하겠습디다.
하여 감수키로 하였지요.
제 때 하는 확인, 중요합니다!

봄가을로 한약을 챙겨 보내오는 벗에게
몇 글자 인사를 보냈는데,
그의 답례가 또 눈시울을 붉히게 하데요.
“아유...제가 눈물이 날라 그래요.
할매 돼서도 같이 놀자요.
건강하세요.”
내가 무엇이어 그에게 그토록 귀한 선물을 받고
내가 무에 한 일이 있어 그에게 이런 인사를 받으며
내가 누구여 그의 마음이 이곳에 머무는가 싶으면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정녕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요,
할매 되어서도 그가 같이 놀고 싶은 사람이도록.

가벼운 영화 한 편 그만큼 가볍게 보았습니다.
숙제처럼 쌓인 영화들을 간간이 한 편씩 보는 요즘입니다.
학기 가운데서 허우적댔던 시간들을 위로하는 거지요,
그렇다고 그간 아니 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면서.
“나는 노는 것도 같이 해줘야지,
그냥 주야장천 자신을 몰아가는 건 죽겠더라고.
그래서 그 틈틈이 노는 것도 하느라고 바쁜 게지.”
그리 노래 부르며 바쁠 땐 바쁘다는 핑계로 보는 영화랍니다.
그러면 여유로울 땐?
그땐 또 여유로우니 놀아줘야지요.
그렇게 보는 영화들입니다.
오늘은 한국영화 한 편.
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늘 크지요.
아이와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엄마가 맺는 관계를 봅니다.
편이 되는 것,
그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가족이 되는 과정이 아니어도
사람 관계에서 그만큼 훌륭한 길이 어딨을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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