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3.쇠날. 비 조금

조회 수 1055 추천 수 0 2009.07.10 17:35:00

2009. 7. 3.쇠날. 비 조금


이곳의 하루는
아침마다 해건지기를 하는 수행시간을 시작으로
오전 세 시간, 오후 세 시간 일을 합니다,
그 시간에 읍내라도 다녀올라치면
저녁에 교무실에 앉기도 해야 하지만,
사실 자주 그러하지만.
한 주는
하루쯤은 청소로 하루쯤은 교무실에서
나머지 날들은 밭에서 그리고 때마다 밥해먹고 살지요.
주말에는 주로 자잘한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 단순한 삶이지요.
소박합니다.
소박의 소(素)는
물들이기 전의 본바탕 그대로의 명주천을 일컫습니다.
박(樸)은 사람 손에 다듬어지지 않은 질박한 통나무,
그러니까 원목을 말하지요.
소박이란 자연상태를 말함이겠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충만하게 살아나가고 있답니다,
별스러울 것도 없이.

그림 그리는 이들과 점심을 먹으러 채식식당에 갔습니다.
지구도 지키고 몸도 건강하자고
권하러 뫼시고 갔지요.
늘 당신들이 사주셨습니다.
어리고, 또 가난하다고 늘 어르신들이 챙겨주셨더랬는데
오늘은 대접해드릴 수 있어서 맘 좋았습니다.

두고 두고 보는 책처럼
보고 또 보는 영화들이 있지요.
도 그런 영화이지 싶습니다.
조근조근 곁에서 말하는 낮은 음성 같고,
편집이 덜 된 듯 거칠되 그런 만큼 진솔함이 배나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하기를 요구하고,
가만히 생각게 하는,
그리고 다사로운....
이레의 단식을 끝내고 첫 끼니를 먹던 아침,
어찌어찌하여 몇 달을 갇혀있던 물을 마시고
대장과 위로 퍼진 독은 코와 입 둘레에서 벌겋게 올랐지요.
아직 독기가 빠지지 않아
한밤에도 속이 좀 시끄럽기도 하였네요.
덕분에 영화를 틀었더랍니다.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비엔나를 걷고 파리를 걷는 이들도 적잖았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최상과 최악의 시간을 선사하는 건
바로 사람이지.”
그렇지요, 사람 때문에 살고 사람 때문에 좌절하지요,
그게 사람이지요.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와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이 세상에 마술이란 게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신은 ‘사이’에 존재한다...
마술은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다...
걷다가 쇠라의 그림을 만나기도 합니다.
“쇠라의 그림에선 인간의 형체는 늘 일시적이야.”
처음 이 영화를 보고난 직후
책방에 달려가 쇠라의 그림들을 다 찾아보았더랬지요.
퀘이커교 결혼식얘기도 여기서 처음 들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서로를 응시한다지요.
그렇게 1시간쯤 흐른 뒤 결혼식이 끝난 거라 했습니다.
정녕 혼례다운 의식이다 싶었지요.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것도
의욕으로보다 욕심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랬습니다.
여전히 그러하데요.
여자 주인공은 어릴 때 늘 지각을 했다지요.
엄마가 뒤를 밟았다나요.
떨어진 밤톨도 들여다보고
개미랑 낙엽 따위 구경도 하며 가더랍니다.
사소한 것들, 나무에서 떨어진 것들,
그런 것들을 보느라고 학교에 늦어진 걸음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헤아리고 이해하고 안아내는 일을 하는 이로
여자를 성장시켰습니다.
소박하게 살고자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작고 여린 것들을 살피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 아닐는지요.

낼 산에 오릅니다.
강원도로 가는 차편이 생겼고
거기 용평리조트 빌라콘도에서 묵을 방이 생겼습니다.
방문 당시 70여년 된 뉴질랜드의 리버사이드 커뮤니티에서
꼭 그런 집에 머물렀더랬지요.
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며 세 돌을 지난 아이를 끌고
여러 나라를 다니던 걸음이었습니다.
여전히 ‘내가 공동체를 꿈꾸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더이다.
7일 단식 끝의 보식 닷새째입니다.
아직은 먹는 것에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하는 시기이지요.
죽으로 저녁을 먹고
낼 산오름에도 남은 단호박죽을 싸가려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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