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16.해날. 맑음

조회 수 960 추천 수 0 2009.08.31 12:41:00

2009. 8.16.해날. 맑음


포도며 복숭아며 실어온 아버지를 따라
건표와 부선이도 울산으로 떠났습니다.
국수로 이른 점심을 먹고 갔지요.
기락샘도 밑반찬 몇 가지를 꾸려
서울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휴가 길에 들른 제자들 정순이와 승아는
하다를 데리고 달골 계곡에 갔지요.
무엇이라도 계자 끝난 살림을 살펴주려 하나
홀로 남은 아이랑 놀아주는 것을 일삼아 달라하였습니다.
옷을 입고 바위폭포미끄럼틀을 타야한단 걸 어제 깨달은 류옥하다,
오늘은 옷 잘 챙겨 입고 갔는데,
애고 어른이고 팬티까지 구멍이 나서 돌아왔더랍니다.
“어쩌냐, 엄마 일 만들어서...”
재봉질로 엄마 일 더해서 미안하다 저가 지레 너스레를 떠는데,
떨어졌기에 버리는 게 아니라
기워 입어야 하는 줄 알아 더 고마웠습니다.

정순이(여자라고 착각하기 좋은 이름이지요)가 저녁 밥상을 준비했습니다.
면소재지 가서 몇 가지를 사 오더니 금새 차려냈습니다.
사랑받는 남편이겠데요.
정말 그는 요리를 잘하나 봅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쉽게 하는 법을 알지요.
떡볶이를 했는데,
커다란 그릇에 양배추와 고기를 푹 삶고
그 국물에 오뎅 통째, 고구마 넓게 썰어 넣고,
양념이라고는 고추장만으로 뚝딱!
“내가 여기 앉아서 밥상 받는 건 또 첨일세.”
찾아온 이들이, 그것도 제자들이 물꼬 부엌에서 해주는 밥상은
정말 처음 받아봤지요, 좋습디다.

휴가철이라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만만찮겠다고
아예 늦게 출발하기로 한 정순이와 승아랑
아이와 함께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마을 길을 걸었지요.
큰형님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오래 걸터앉았습니다.
어두워지는 산마을을 내려다보다
퍽이나 오랜만에 이 시대 우리를 둘러싼,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을 했습니다,
계자의 3주는 세상 아주 먼 곳이니까요.
우리들 참 건강하다 싶데요.
이 시대에도 아직 그런 얘기들을 꺼내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거기 아이도 끼어 같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어둑해진 마을길을 걸어 돌아왔지요.
곧 그들도 떠났습니다.

별빛은 밝으나 달빛은 여린 밤 아홉시,
아이가 혼자 달골을 좀 다녀와야겠다 했습니다.
마침 자기 글집이 필요한데 거기 있다데요.
엄마를 설득해서 차로 다녀오자고 하기에는
분명 설득력이 약했겠지요.
그 밤에 손전등 들고 다녀옵디다.
달골에서 나와 마을길로 합쳐지는 삼거리,
길고 가는 그림자에 놀래 넘어져 도랑에 다리가 빠졌는데,
달맞이꽃 그림자였다던가요.
땀 뻘뻘 흘리고 뛰어왔더랬습니다.
다 자기 필요가 있으면 움직이게 되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라갑니다.
그런데, 집 하나 없는 1킬로미터 넘지 싶은 어둑한 산길을
혼자 갈 생각을 하고 정말 다녀오다니,
그것도 무지 겁 많은 녀석이,
참 그 ‘필요’라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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