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24.달날. 맑음

조회 수 888 추천 수 0 2009.09.05 22:37:00

2009. 8.24.달날. 맑음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딱히 어떤 일이 있어서가 아니어도
무기력이 장악하게 될 때가 있지요.
설거지를 하다가 소사아저씨께 물었습니다.
“삼촌은 그럴 때 어떻게 건너가세요?”
“그럴 때 가만 있으면 힘이 더 빠지요.
그러면 더 힘들 때 일도 쌓이고
그럴 때 더 움직여야 하요.”
물론 당신의 삶이 전적으로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당신은 구도자입니다.
이 시대 어떤 배운 이들보다 더 깊은 지혜가 그에게 있습니다.
그런 사람 곁에서 깊이 배울 수 있어 고마웠지요.

어제 못한 식구한데모임이 있었습니다.
식구가 된다는 것,
가족체가 된다는 것에 대해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거창한 공동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둘만 되어도 같이 살기 쉽잖지요.
그렇다면 같이 사는 데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위대한 시인 오든의 말을 빌어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가족은 그런 거지요.
오랜 병마를 앓던 이가 그랬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여러 사람이 찾아와 주겠지만,
가족과 같이 떠나지 않을 사람을 가진 것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나를 계속 지켜봐주는 사람,
언제나 나를 지켜봐줄 사람을 갖는 것과는 다르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구나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짚어봅니다.
이곳은 삶터입니다.
단순히 근무를 하는 일터가 아니지요.
그래서 일하는 시간이 끝나도 삶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그런 자세여야 한다는 걸 다시 되새긴 시간이었답니다.

부산에서 오랜 논두렁이었던 부부가 연락을 했습니다.
두 딸이 어느새 학교를 가게 되자
귀농을 생각하며 방문을 요청했지요.
이런 경우는 반갑습니다.
이 공간을 위해 애써준 이들,
숟가락 하나 되어주지도 못했던 이들의 방문과는 다르지요.
그냥도 다녀가십사 합니다.
주중에는 여기 사정이 여의치 않다 하고
다음 달 빈들모임에 오시는 건 어떠냐 여쭈었습니다.
갓난쟁이 아이 때부터 연을 맺어
이렇게 그 아이가 커서 찾아오게 되는 일은
이 공간을 같이 꾸려온 이들이기에 반갑기 더하다마다요.
그런 이들이 이곳을 꾸려갔고, 그리고 꾸려가고 있답니다.
상주하는 이가 몇 되지 않아도
이곳이 굴러갈 수 있는 까닭들이지요.

바깥에 나가서 하고 있던 공부가
오늘 이번학기 개강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강의실 맨 앞,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얼굴을 돌리며
아주 빤히 오래 쳐다보았습니다,
민망할 만치.
아마도 나이든 아줌마가 있어 그랬나 보다 했는데,
재작년 그 대학에 특강을 하러 갔을 적,
바로 그 특강에 왔던 친구였지요.
제법 나이 많은 그 친구,
이런 인연도 재밌습니다.
이번학기 좋은 친구가 되겠데요.
때로 공부는 친구가 있으면 힘이 됩디다,
하기야 무엇이 그렇지 않을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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