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불날. 맑음

조회 수 939 추천 수 0 2009.09.09 16:24:00

2009. 9. 1.불날. 맑음


마지막 풀베기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호두나무, 감나무, 닭장, 표고장, 호박밭 둘레들을
종일 예취기 돌리고 있답니다.
이 기세로 한가위를 쇠도 되겠지요.
따로 그 즈음 풀을 베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물꼬 식구들이 많이 그리워하는 이 가운데
태석샘이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겝니다.
그가 다녀갔습니다.
대학생 때 자원봉사를 와서 연을 맺었고,
지금은 대전에서 특수학급 교사로 있지요.
무주에서 농사짓는 집안 어르신들이
올해는 인삼을 캔다 했습니다.
거기 다녀가며 들렀지요.
밥도 아니 먹고 겨우 미숫가루 한 컵 마시고 갔습니다.
머잖아 사랑스런 아내랑 같이 또 보겠지 합니다.
귀한 삼을 한보따리 들여보내두고 갔네요.

이번 학기 제도학교를 한동안 경험하게 된 아이는
이른 새벽에 아침을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은 관련 서류도 챙겨 그 학교에 보냈지요.
주소지도 그 학교로 옮겨놓았습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잠깐 설렁해집디다.
부모 마음이란 게 그런 것일 테지요.

제도학교에 쉽게 익어버리진 않을까 싶어
거기서 보내는 날들이 너무 오랜 시간이 아니길 바랍니다.
스스로 깨쳐가던 즐거운 진리추구의 길에서
이제 누가 가르쳐주는 것을 익히는 것에
쉬 길들여지지 않을까 걱정이 일지요.
물론 제도학교, 이 시대 대다수가 거치는 길이고
아이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엄마도 제도학교를 통해’ 탈학교를 꿈꾸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도학교를 지지할 수는 없네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느새 자기 마음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삶이 주는 전율하는 기쁨들을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며,
다수가 해야만 한다는 것에 그만 내몰려 자기의 정체성을 잃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무조건 끌려가는 일 또한 허다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단단히 일러주었지요.
말할 것도 없이 누가 뭐래도 학교가 가진 긍정성이야 있다마다요.
사회에 대한 적응도 배울 것이고
거기에서 쓰일 기술들도 익히겠지요.
그런데 우리 삶에는 그 너머의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탈학교 지향자들은 어쩌면 바로 그 너머의 것에 대한
가치를 크게 두는 이들 아닐까 짐작합니다.
학교에서 배우기 힘든 생의 깊고 오묘한,
우리 삶의 진한 질감들이 있지요.
삶의 목적을 스스로 찾고
우주를 우러르며 자신이 그 한 부분임을 느끼며
자신의 심연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학교가 아니라 특히 부모가 가르쳐주어야할 것들 아닐지요.

열두 살에 이르기까지 가보지 못한 제도학교는 아이에게
제도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절차들에 불만을 쏟게 하고 있습니다.
일기검사가 한 예이겠습니다.
아이는 갓난쟁이적부터의 자기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말을 못했을 땐
곁에서 돌봐주던 식구들이 그의 움직임을 기록했고,
그래서 그 시절의 물꼬 식구들은 유달리 각별하지요,
말을 하기 시작해서는
저녁이면 그의 말을 받아 적어줬습니다,
그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해서부터는 그림과 글을 같이 담고
드디어 글만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기 몇 년,
어느새 열두 살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저녁마다 혼자 즐겁게 잘 써왔던 일기가
그 검사 때문에 싫어진다 합니다.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방법을 잘 찾아봐.”
날적이(일기)라는 것이
자기성찰, 혹은 자기기록에 대한 글들이 즐거움이면 참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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