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7.달날. 맑음. 백로

조회 수 944 추천 수 0 2009.09.18 23:39:00

2009. 9. 7.달날. 맑음. 백로


산마을 사람들이 호두를 따내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백로입니다.
이 날을 앞뒤로
사람들은 장대들고 호두나무로 가지요.
거기 장대 끝에 가을 하늘이 걸려 내려오고
가을빛도 딸려와 가을꽃들 물듭니다.

틈틈이 저녁이면
여름 계자를 다녀간 아이들 집에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여름 속으로 가는 거지요.
그 속에 아이들이 노닐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있어 고맙습니다.

가끔 같이 사는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특히 아이에게.
낡은 것들을 헤집으며
그는 그에게 쓸 만한 것들을 챙깁니다.
옷이 그렇고, 종이가 그렇고, 제 필요한 물건을
그 낡은 것들 속에서 찾고 씁니다.
오늘도 그 뭐였더라, 뭘 챙기고 가데요.
새 것이 갖고 싶을 만도 할 텐데...
아, 꼭 한 번 그랬습니다.
나도 새 옷 한 번 입어보자,
그래서 아비가
시장 가서 가벼운 바지 하나 셔츠 하나 사 준 적 있었지요.
오늘 문득,
아이고, 저도 제 삶이 힘겨울 때가 있을 것인데,
덩치가 크고 입이 똑똑해서 애란 걸 자주 잊네 싶어
그를 도와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말고는 도대체 어른 무서운 줄을 몰라
엄마한테 맞는 야단이 호되지요.
요즘 제도학교에 나가보는 일이 고되기도 할 텐데
늦게 일어난다고 오늘 아침도 한 소리 들었습니다.
제 생을 얼마나 많은 기쁨으로 채워주는 그인데,
그가 고단한 시간
더 많이 힘이 되고 위로가 돼야지 싶습디다.
미안하데요.

오늘 아침은 아이가
미술도구 몇 가지를 챙기고 있었습니다.
“시간표에는 없는 것 같던데...”
“원래 토요일에 하는 건데...”
“너는 안 가는 날이잖아. 그런데 하래?”
“그게 아니라, 왜냐하면, 학교는 그런 게 있어,
수업시간을 채워야 하는.”
수업시수에 대한 얘기입니다.
우리 시대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학교에서 하라고 하면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많은 설명을 해주나 봅니다.
하여튼 요새 애들은 제도시스템을 잘도 알지요.
한편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요.
아이들이 그 제도가 가졌을 수 있는
부정성 내지는 불합리성도 다 알지 않겠는지요.

멀리 있는 제자 하나가 좌절이 깊어 여러 날을 앓고 있는데,
그저 해줄 수 있는 것은 말 뿐입니다.
“하나님, 부처님, 혹은 누군가가
네가 가는 길은 갈 길이 아니라고 주저앉히는 것이 절망이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무너지지, 어떤 사람은 목을 매고.”
그런데 그 가운데 몇 사람은 솟구친다나요.
꿈을 가진 사람만 솟구친다데요.
“네 꿈이 무엇이었던지를 떠올려라.”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겝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건 ‘지나간다’는 사실이지요.
그가 그 터널을 지나는 시간을
잘 동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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