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11.쇠날. 맑음

조회 수 1054 추천 수 0 2009.09.18 23:41:00

2009. 9.11.쇠날. 맑음


대해리 영화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물론 고래방이지요.
“쇠날은 movie day로 하죠?”
그러면 참말 좋겄지요.
달에 두어 차례만 돼도 말입니다.

그리하야 지난주엔
(크리스틴 제프스 감독, 2008)이 올라갔습니다.
여학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학교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 유부남을 사랑하며 혼자 아들을 키우는 한물간 치어리더 언니,
아직까지 독립하지 못한 채 세일즈맨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생
(그들은 자살한 엄마의 기억을 가진 자매이기도 하죠),
냉동새우를 팔지도 못하고 다 썩혀버리는 외판원 아비,
상상력이 출중(?)해 공립학교에서 외면당하는 사생아,
청소제품 파는 외팔이노총각,
어딘가 결핍을 지닌 인물들이 함께 만드는 따뜻한 가족애라고 하면
대충의 줄거리가 될까나요.
‘미스 리틀 선샤인’의 조금 김빠진 버전쯤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자매가 펼치는 뛰어난 연기력이 좀 억울하겠지만 말입니다.
이들은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함께
‘선샤인 클리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범죄자살현장 청소대행업을 합니다.
그런데 생은 늘 복병을 데리고 다니지요.
동생의 실수로 현장이 불에 타고
그것을 변상하기 위해 있던 차도 팔고...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한 번 보셔요.
유쾌한 장면도 많답니다.
특히 아들 오스카와 아버지(오스카에겐 물론 할아버지죠)의 대사들이
영화를 빛내지요.
후레자식 소리를 듣고 온 조카 오스카에게 자매의 동생이 하는 얘기도
이 영화의 유머이겠네요.
“알고 보면 후레자식이 속편한 면이 많아.
후레자식들이 여자한테 인기도 많고 잘 먹고 잘 살지.
너는 최고의 후레자식이야!”

오늘은 무슨 영화일까요.
저녁을 먹은 식구들이 모두 기어이 오늘 밤에 영화를 보겠다고
김치 담는 일에 다 붙었습니다.
게다가 김치종류가 세 가지나 되네요,
깍두기, 열무오이김치, 배추김치.
불 앞에서는 밀가루풀을 쑤고
한 쪽에선 열무와 배추를 다듬고
다른 쪽에선 마늘을 찧고
아이도 쪽파를 벗기고...
정말 뚝딱뚝딱이었습니다.
“일단 절여만 놔요.”
영화가 끝난 뒤 버무리고 나니 자정이 훌쩍 넘어버렸데요,
아고, 그놈의 영화...

오늘은 이사벨 메르고 감독의
<미남이시네요>(You Are So Beautiful, Je Vous Trouve Tres Beau, 2005).
영화제 소개글은 이랬지요.
‘쌓여가는 먼지와 빨래 더미에 지친 남자 에메(미셸 블랑 분). 이제 막 아내를 잃은 이 중년 남자는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여성이 아닌, 농장 일과 집안일을 함께 해 줄 '일꾼'으로서의 여성이 필요하다. 그런 여자를 찾기 위해 결혼중매회사를 찾아간 남자는 루마니아까지 비행기를 타고 원정을 떠나기에 이른다. 그리고 거기에서 엘레나(메디아 마리네스쿠 분)라는 적임자를 만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프랑스판 <나의 결혼 원정기>가 따로 없다. 그러나 이사벨 머걸트 감독은 두 사람의 로맨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루마니아에서 온 여자 엘레나와 프랑스 중년 남자 에메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에 주목한다.’

그런데 결혼의 기회조차 막힌
이 땅의 농촌 총각들의 절실한 원정기랑은 차이가 있지요.
누가 그랬습니다.
“일꾼처럼 부리던 아내는 결혼생활에 진력이 날 때쯤 조용히 사라져주고,
새로운 일꾼을 구한다는 핑계로 더 젊고 예쁜 여자 얻고...”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고집만 셌던 남자는
마침내 사랑에 눈 뜨고 우리를 감동시키지요.
하지만 영화는 작은 불편을 남기기도 합니다,
마치 남한이 천박한 나라로 묘사된 헐리우드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프랑스 남자에게 구애하는 지나친 허영의 루마니아 여자들,
그게 사실일지라도 슬펐지요.
하지만, 시선을 끄는 힘이 약하긴 하나
시끌벅적한 시골 마을의 주변 인물들이며 친구도
영화를 채우는 좋은 볼거리들입니다.
어디나 사는 이야기가 좋습디다.
루마니아로 돌아간 엘레나가
신문 한 장으로 에메의 배려를 뒤늦게 알게 되는데,
그런 신문 한 장이 없는 게 또 현실이지요.
얼마나 많은 진실들을 관계에서 우리는 놓치며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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