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13.해날. 맑음

조회 수 1115 추천 수 0 2009.09.18 23:42:00

2009. 9.13.해날. 맑음


어제 식구들이 탱자를 땄습니다.
옹글옹글 열린 탱자를 보며 아이가 소리쳤지요.
“유자가 강을 건너오면 탱자가 된다는 그 탱자?”
“그래,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그 탱자!”
익기 직전이었습니다.
효소는 푸릇푸릇한 이때가 좋습니다.
집집이 도둑을 막는 울타리였고
아이들에게는 구슬치기용이었던 탱자입니다.
옛적엔, 노랗게 익을라치면
아이들이 쪽쪽 빨며 주전부리 삼았다지요.
오늘은 그것으로 효소를 담았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만 시기를 놓쳐버렸던 탱자효소랍니다.

오랜만에 쿠키를 구웠습니다.
마침 고구마가 좀 있었지요.
아이가 읍내에서 돌아오는 저녁답이면
배가 고프다합니다.
그렇겠습니다.
해서 느지막한 오후에 먹으라고
날마다 무엇이라도 싸주어야지 싶었지요.
그런데 그것도 안하다 하니
영 시원찮습니다.
몸에 온전히 붙은 일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게 되건만...

얼마 전 아이가 아주 혼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뭐 아주 없는 일도 아닙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야단을 치는 이도 혼이 나는 아이도
금새 감정들을 잘 회복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날 웬만큼 시간이 지난 다음
아이가 그랬습니다.
“음... 야단을 치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인 것 같지 않아.
아이 행동을 고치려고 그러는 건데
야단을 맞는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거든.”
무슨 말인가 싶었지요.
“해바라기한테 무슨 일을 생기면...”
세 해째 씨를 받아내며 키우는 제(자기) 해바라기 이야기였습니다.
왜 잘 안 크냐, 왜 잎이 시더냐,
자기는 야단을 치지 않는다지요.
문제가 무엇일까 이리저리 잘 살피고
흙을 돋우고 물을 주고 가 쪽으로 제 오줌을 눈답니다.
아, 틱낫한 스님의 상추 이야기가 떠올랐지요.
우리는 상추가 잘 자라지 못할 때
“나쁜 상추야! 너는 노력만 하면 더 잘 자랄 수 있어”하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토양, 영양분, 상추에 영양을 공급하는 배경을 조사하고
무엇이 모자라는가, 아니면 해를 끼치는 것이 있는가,
살피고 조절하지요.
그 뒤로 태도를 좀 바꾸었습니다.
야단이 없어졌지요.
아이도 저도 더욱 단란한 시간이 되고 있답니다.

행운님네 두 분은 마을을 한 바퀴 걷고는 떠나셨답니다.
조만간 머물 일이 있다시니 좋습니다,
늘 당신들로부터 받고만 살다
물꼬가 나눌 수 있는 일이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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