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16.물날. 맑음

조회 수 891 추천 수 0 2009.09.28 14:29:00

2009. 9.16.물날. 맑음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일까요.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 역시
살아가는 날들에 큰 힘입니다.
기꺼이 길을 잃으라던, 뜨겁게 살았던 이의 기록도 있었지요.
저는 자주 길을 잃습니다.
잃은 길에서 더 많이 성찰하고
더 많은 길을 만나고
그리고 다시 선택을 하지요.
“얘야, 기꺼이 길을 잃거라.”
젊은 친구들에게도 그리 들려줍니다.

임실에서 온 물건을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택배로 보내오기도 까다로운 것이었지요.
물꼬에 요긴한 것이어 가서라도 받아올 참이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양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가는 길목에 선배 하나 살지요.
부탁합니다.
그걸 받아 다시 영동으로 넘어와 전해주고 가셨네요.
늘 그런 그늘로 살아간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를 제도학교에 보내고 보름,
오늘 교무선생님, 담임선생님과 함께 면담이 있었습니다.
교무선생님의 배려였지요.
일반학교 보내놓고 걱정이 많을 거다,
그리 짐작하신 게지요.
걱정보다 허물 많은 아이인지라 그저 죄송한 마음 크지요.
어디 내놓기가 참...
그런데 주고 받은 얘기보다
교무샘이 인상 깊었답니다.
자기 자리에서의 적절한 역할을 해내는 것 말입니다.
공무원으로 오래 살면서 만들어진 긍정적 면 아닐지요.
교사의 처지에서 학부모를 살피는 마음을 보며
교사로서 부족한 저를 보는 거였지요.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도
아이의 제도학교 비판은 계속됩니다.
“학교는 1단계만 가르치는 것 같애.”
사회시간이었다데요.
“구제금융이
아이들은 무슨 기구처럼 ‘어디 있는 거’라고 자꾸 생각해.”
그렇게 말을 시작하더니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아이들과 토론을 벌인 일을 전하였습니다.
“저축이 1차적이지.
그런데 그게 심화되면 디플레이션을 또 조장하잖아.”
저축, 그 선을 넘지 못하고
그 너머는 자기들이 다루는 문제가 아니더랍니다.
학교는 배움에 있어 확장된 것을 다루지 않더란 말이지요.
그런데 더 웃긴 건
‘학교는 제도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진단이었습니다.
재미난 날들이네요.

“앞일은 알 수가 없지만 지나간 일은 절대로 변하지 않잖아.”
수년 전의 대중영화 하나를 오늘 잠깐 틀었더랍니다.
이 대사가 남데요.
그러게요, 오지 않은 내일은 알 수 없으나
내가 살아간 날은 결코 변하지 않지요.
그래서 열심히 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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