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17.나무날. 맑음

조회 수 913 추천 수 0 2009.09.28 14:29:00

2009. 9.17.나무날. 맑음


“낮에 전화하셨더라구요.”
전화를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들어와서는 이곳의 삶과 전화가 멀고
나가서는 또 그 나름의 까닭으로 또 전화가 멀지요.
저녁 밥상을 물리고서야 밀려든 전화를 챙겼습니다.
멀리 계신 물꼬 바깥샘 한 분의 연락도 있었네요.
“하늘이 너무 파래서...”
아, 고마웠습니다.
파아란 하늘이 이곳을 떠오르게 했답니다.
언젠가 수년을 호주에 나가 있던 친구는
햇살에 반짝거리는 강 앞에 설 때마다
벗이 그리웠다 했습니다.
고마울 일들입니다.
이곳에서도 둘러친 산들이 자주 사람들을 데려오지요.
계자를 다녀간 아이들의 얼굴이고
손발이 되어주는 품앗이샘들이고
큰 그늘을 드리워주시는 어른들이고
이제는 세상에 있지 않은 얼굴들이고...
그래서 이 산골이 외롭지 않은 갑습니다.

달골 창고동 지붕에 문제가 있었지요.
지난 여름 큰 비에 그만 샜더랬습니다.
공사를 한 지야 여러 해가 지났지요.
그런데도 그 때 분들이 오셔서
오늘 지붕을 손봐주셨답니다.
강판과 강판을 실리콘으로 이어놓았는데
햇빛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늘어나거나 줄거나 하다
간극이 생겼다지요.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요?
우선은 막아서 잊어버렸지만 고민입니다.
하기야 집을 짓고 사는 일은
살면서 늘 그리 살피고 고쳐가는 일일 테지요.

박성배 교수의 <깨침과 깨달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입니다.
참선하는 선승들은 '깨쳤다'와 '깨달았다'를 구별하여 쓴다지요.
깨달음이란 지적 세계에서 종래에 몰랐던 것을
이제는 좀 알았다 하는 것이라면
깨침이란 지적 세계 자체가 난파하는 대목을 두고 하는 말이랍니다.
전자가 일종의 보태는 행위에 불과하다면
후자는 보탤 자리 자체가 없어졌다는 말인 게지요.
육조단경의 신수의 시와 혜능의 시가 좋은 비교입니다.
신수는 거울에 먼지가 안지 않도록 부지런히 닦자고 말하는데
혜능은 거울 자체가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앉겠느냐 하지요.
흔히 자기 잘못을 뉘우칠 때
나는 내 잘못을 깨달았다고 말하지만 똑 같은 잘못을 또 저지릅니다.
그러나 개쳤다는 말은 잘못을 저지르는 주체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할 수 없지요.
“...깨달음은 퇴전의 언어인데 반해 깨침은 불퇴전의 언어이다. 그래서 깨달았다고 큰소리쳤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지만 깨쳤는데 다시 어두워졌다는 말은 선방의 어법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다. 깨달음이 업의 연장에 불과하다면 깨침은 업이 깨지고 부서지는 일이다. 깨져야 깨친다. 깨짐 없는 깨침은 없다.”
깨짐 없는 깨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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