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18.쇠날. 맑음

조회 수 910 추천 수 0 2009.09.30 18:03:00

2009. 9.18.쇠날. 맑음


“엄마, 저 봐!”
산꼭대기가 타고 있습니다.
오메 단풍들겄네,
시인의 노래처럼 아이가 소리쳤지요.
가을이 거기서 걸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라디오는 관현악단 연주를 내보내고 있구요.
가을 야외콘서트장이 따로 없는 대해리였답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오다가다 어르신들로부터 더러 듣는 얘기입니다.
오늘도 마을 할머니 한 분 그러시데요.
대처에 나가있는 아들네에 생긴
우환을 전하며 그러셨지요.
전생이라는 것의 전제는
생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는 것일 테지요.
그렇다면 이 생은 다음 생의 전생이 되는 걸 겝니다.
아, 이 생에 더욱 집중해야할 까닭 하나 아닐는지요...

장률 감독의 영화 <경계>를 보았습니다.
글을 쓰던 사람들이 만든 영화는
그가 쓰던 글에서의 정서가 역시 배어납니다.
이창동이 그랬고, 에릭 로메르도 그랬지요.
마치 책장을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의 장면들,
그렇지만 문학이랑은 또 다른 장이었던...
점점 사막화 되어가는, 경계가 없는 몽골 대평원에서
탈북 모자가 사막에 나무를 심는 남자의 집에서
얼마를 머무르며 보내는 시간을 담았습니다.
지평선 말고는 경계가 없는 곳에서
사람 사이, 자연과 사람 사이,
그 모든 사이에 있는 경계가 허물어지나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할까요.
어쩌면 조선족으로 한국인과 중국인의 경계에 설 수밖에 없던
감독 자신의 이야기는 또 아니었을까 모르겠습니다.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가 특히 재밌었지요.
아주 먼 거리에 인물을 담았는데,
그 먼 거리에서 오가는 감정의 흐름이 너무나 적절하게 드러나서
퍽이나 이 감독의 특징을 잘 담아냈구나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삶이 계속된다는,
꾸역꾸역 밥을 먹고 나날을 사는 지난한 삶의 연속이
건조하나 건조하지 않은 진실로 그려지는 듯도 했지요.
탁월한 그의 영화문법이 하 궁금해져서
인터뷰를 담은 영상도 잠시 봤습니다.
“몽고라는 땅, 드넓은 초원을 바라봤을 때
마치 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핸드헬드방식으로 찍었다...”
익스트림 롱숏이나 롱숏으로 찍은 까닭은
몽고라는 공간자체가 가지고 있는 광활함에
클로즈업은 어울리지 않아서였다지요.
느린 패닝 또한 몽고인들이 가진 시간개념을 좇았다나요.
느린 걸음의 영화를 좋아하는 저 같은 이들에겐
아주 딱인 영화였답니다.
그의 영화에 대해 혹자는
지독하게 사유를 요구하고 묻는 영화라던가요.
소문 무성한 그의 <중경>과 <이리>도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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