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19.흙날. 맑음

조회 수 880 추천 수 0 2009.09.30 18:04:00

2009. 9.19.흙날. 맑음


아파트가 이 땅에 들어서던 초창기에
이모 한 분이 거기 들어가 살게 되셨더랬습니다.
어릴 적 방학에 그곳에 가보고는
화장실이 비나 눈을 맞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랐던지요.
신발을 갈아 신지 않고 동선이 이어지는 생활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편리해보여,
그리고 집을 비우는 일이 거의 없이 살았던 우리 가정사에
몇 날 며칠 집에 사람이 없이도 관리가 가능한 것도 신기했고...
단독에 살다가 가끔 아파트에 방문하는 날이면
참 편하기도 하겠다 은근히 작은 부러움이 일 때도 있었고
몸이라도 아주 아파서 힘에 겨울 땐
아파트가 그리 나쁠 것도 아니겠네,
심지어는 거기 살아도 좋겠네 싶은 마음도 들었더랬습니다.
그런데, 다시는 아파트를 쳐다보지 않게 된 건
어쩌면 아주 최근의 일이라지요.
아파트 그게 어디 사람 사는 데냐,
아주 심하게는 그런 생각도 하였지만
아무리 논리적으로 그러하네 싶어도
자기 삶에서 온 몸으로 그걸 체득하는 일은 또 다른 거 아니던가요.
자, 어느 날 전기 뚝 끊어졌다 해봅시다.
고층 아파트에서 오르내리는 일은?
옥상의 물저장고가 바닥이 나고 나면?
밥도 밥이고 화장실은?
이삼일을 못 버티는 거지요.
온 몸이 그에 대해 반응하게 됩디다.
그래서 요새는 전시를 생각해서 돈 있는 사람들이
주 생활은 아파트에 하면서
시골의 단층집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나 어쨌다나요...
갈수록 산골 사는 우리 삶이 정승일세,
뭐 그런 생각 들고는 하지요.

오전은 학교와 달골을 청소하며 보냅니다.
마침 주말이기도 하고,
오늘부터 새 식구들이 들어오기도 하지요.

저녁 늦게 달골로 들어섰습니다.
햇발동 문을 열자
음식내와 온기가 훅 끼쳤지요.
걷어진 이불빨래...
좋데요, 입이 자꾸 벌어집디다.
달골에 두 분 어른이 한참을 묵게 되셨습니다.
물꼬의 오랜 큰 논두렁들이시니
사실 달골의 주인이 들어온 셈이지요.
사람 손에 비해 넓은 물꼬의 공간이 막막하던 참에
당신들이 달골을 맡아주시게 되었답니다.
마침 건강 때문에도 도시에서 거처를 옮기시려던 참에,
물꼬에 계십사 간청드려 이루어진 일이었지요.
당신이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
물꼬가 마음을 쓸 수 있어서도 좋습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쓰일 수 있음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주말이라 기락샘도 들어왔네요.
북적합니다, 좋습니다.

아이의 날적이(일기)를 들여다보는데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주 하지요.
정녕 고마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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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19.흙날. 구름 조금

< **샘 >

ooo 형아네 아버지이신 **샘은 몸이 굉장히 안 좋으시다. 암이던가?(옮긴이 註. 아닌데...) 하여튼 그렇다. 그분과 사모님이 엄마가 허락하셔서 우리 학교에, 달골에 살게 되셨다.
이 좋은 산골에서 빨리 몸이 나으시고 건강해지시면 좋겠다.
물론 이제 달골 햇발동에서 우리끼리 큰 소리로 말하거나 팬티만 입고 다닐 수는 없게 됐다. 약간 불편하겠지만 **님이 건강하게 되시는 데에 그 정도 희생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식구가 둘이나 늘어서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열두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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