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21.달날. 비
지난 주 달날도 비가 내렸더랬는데
오늘도 비 왔습니다.
가뭄을 걷어줄 만큼 많은 양은 아니나.
마을이 가뭅니다.
벼농사야 물을 빼는 때이니 아쉬울 게 없으나
정작 사람 먹는 물이 말라갑니다.
오늘 내일 물이 끊길 것 같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물론 동네에 지하수가 있기도 하고
또 달골에서 내릴 수도 있으니 대안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큰일입니다요.
지난 어느 때는 마을에 물이 귀해서
면에서 급수차량이 온 적도 있었더랬지요.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이민을 갔습니다.
영영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길이었지요.
떠나기 전
그 집에 경사가 있어 사람들이 부조를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난히 두꺼운 봉투가 있었지요.
모두에게 화제였습니다.
“가면 돌려받지 못할 텐데...”
부조란 게 주었으면 나중에 받기도 하고 그런 것이니
당연 이런 말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 봉투의 주인 대답이 이러하였습니다.
“이제 부조할 기회가 이제 없으니 많이 해야지.”
어떤 맘으로 살아야 하나 생각게 하는 일이었다고들 했답니다.
달골이 밝아졌습니다.
머물면서 돌보는 분이 계시니
당장 집 둘레 풀부터 정리가 되었지요.
마당을 들어서면서 놀랬더랬습니다.
어둠 속인데도, 훤하데요.
그렇게 일 하나를 덜어주고 계셔서 고마웠지요.
게다 당신들이 하실 일이 또 생겼더랬습니다.
밤에 읍내에서 급히 모임 하나 있었지요.
읍내 나와 있던 아이를
달골 식구들이 실어가 주신 겝니다.
산골 살며 시골 삶을 준비하고 건강을 돌보시려는 분들에게
정작 물꼬가 얻는 일이 더 늘고 있네요.
군내에서 서둘러 모임이 하나 꾸려졌습니다.
영동에 사라진 신문 하나를 복간하자는 거였지요.
문화계 사람들이 주류이지만
귀농한 이들이며 유기농가들, 채식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이
더해졌답니다.
지난 영동생명평화모임에서 나왔던 문제제기가
활성화된 것이기도 하지요.
이 신문은 20년 전 뜻있는 사람들의 공동출자로 출발하여
일찍이 노근리문제를 변방에서 중앙으로
그리고 세계적 사건으로 끌어낸 업적도 있습니다.
당시 중앙지에서 기사를 받아가서 쓸 정도였다지요.
소읍의 지방지가 일본까지 기자를 파견하여
기획기사를 썼던 것으로도 유명한 일화가 있는
나름 유서 깊은 신문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인터넷판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이 신문을
여전히 인쇄매체가 가진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며
비판기능을 지닌 신문이 사라진 지역에서
어떻게든 신문 하나 내보려지요.
끝에 남은 몇은 늦어져
물꼬까지 들어와 밤새 시끄러웠더랬습니다.
“거의 날밤을 샜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