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22.불날. 맑음

조회 수 1004 추천 수 0 2009.10.06 12:00:00

2009. 9.22.불날. 맑음


포도효소를 또 좀 담았습니다.
아무래도 식구들 먹을 것도 모자라겠다 하자
이웃에서 실어주셨지요.
요새는 허드렛포도조차 잘 없습니다.
왜냐면 즙을 내서 다 돈사기 때문이지요.
포도농을 짓지 않아도
봉지를 싸지 않은 것들이 달려있는 포도밭에서
더러 남은 것들을 따 잼도 만들고 효소도 담고 술도 담았는데,
이제는 도통 그런 포도를 찾을 수가 없답니다.
저녁에는 식구들이 같이 둘러앉아
딴 풋고추를 썰었습니다.
얼마쯤은 통째 상자에 넣어져
부엌 바깥 냉장고에 들어갔지요.
어슷썰기도 하고 굵게도 썹니다.
겨우내 찌개며 여러 가지 요리에 때깔을 내
밥상에 오를 것들이지요.

읍내에 날마다 나가고 있는 아이는
오늘 아침도 일어나기 힘들어했습니다.
달골에서 먼저 학교에 내려와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올라갈 참인데,
아이가 나타났지요.
달골에 와 계신 행운님이 데리고 오셨습니다
(아, 요새 물꼬 식구가 둘이나 늘어있답니다).
그렇게 또 손을 덜어주고 계시네요.

달골 2층에는 방이 넷 있습니다.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따온
하늘방 바람방...
그 방마다 이제야 제대로 커튼이 걸리고 있지요.
그간 대충 걸려 빛을 막고 있었더랍니다.
그걸 달골 계신 행운님과 성현님이 챙기신 게지요.
어제든가는 습해서 찢어둔 거실 벽지를
아이들 한지작품으로 장식해두셨습니다.
도예를 하며 감각이 남다르단 소문이야 들었지만
정말 예쁩니다.
좋습니다.

아이에게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기야 어디 자식에게만 그럴라구요.
무슨 일을 해도 매한가지다 싶지요.
하지만 사람에게 ‘기다림’보다 더한 응원이 있을라구요.
친절하고 차분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사려 깊은 아이로 거듭날 거다,
그리 기다려보는 거지요.
그리 될 겝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 우리가 주어야할 것들이 있지요.
친절, 평화, 진리의 씨를 심고 물을 주는 거요.
그러다 안 되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분명한 건, 어쨌든 아이는 자신의 삶을 살 거라는 겁니다.
그저 지지가 필요하지요.
그러면서 조급한 마음을 또 내려놓습니다.

아이가 오늘 여러 사람 앞에서
파워포인트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이라고 하는 것 말입니다.
자신이 해오던 실험결과 보고였지요.
이 세대는 정말 우리랑 종(種)이 다르다는 어느 분의 말씀처럼
아이들은 몇 가지 잠깐 써보고 바로 파워포인트 작업을 하데요.
집을 나서며 발표에 도움말을 구합디다.
무슨 말을 하려나요.
단상에 오르기 전 크게 숨 한 번 쉬라 일러줍니다.
무슨 대회를 나갈 때마다
마지막 순간 제 은사님들이 등 뒤에서 해주셨던 말씀이고
‘무식한 울어머니’ 큰 일 앞두면 자주 그러셨으며
저 역시 일마다 그러지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거지만.
다녀온 아이에게 물었겠지요, 어땠냐고.
다른 사람들이 화면 안에 전하고자 하는 말을 글로 다 담았던데,
그래서 다들 그 글을 그냥 읽던데,
그러면 말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자기는 하려는 말을 요점만 올려놓고 말을 했다 합니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내참, 심사위원들의 공정성을 못 믿겠다는 투인데,
학교샘들은 학교식으로만 채점할 거라는 부정성은
혹 제가 키워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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