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빈들모임 이튿날, 2009. 9.26.흙날. 흐려지는 하늘


지금 가을 맞지요?
흐린 날의 가을날 아침은
파란 담쟁이 속 붉은 몇 점이
더욱 그 색을 선명히 합니다.
아침수행으로 하루를 열지요.
하늘이 성큼 창으로 들고,
산골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습니다.
더러는 먼저 달골 둘레를 산책하고 들어오는 이도 있었답니다.
비면 비는 대로 사람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 풍경을 아름다이 빚어내는 산골입니다.

천천히 달골에서 마을로 걸어 내려오고
느리게 아침을 먹고
찬찬히 메밀차를 마시고
어기적어기적 손바닥만 한 밭뙈기로 갔지요.
된장집 뒤란이니 밭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곳입니다.
거기 고구마 조금 놓았더랬습니다.
애고 어른이고 다닥다닥 모여
엉덩이를 치켜들고 엎드렸네요.
줄기부터 걷어냈습니다.
“와 벌써 캐야?”
멀리서 착한할아버지 더 키워서 아니 캐고 날래 캔다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냥 사람들 있을 때 쪄먹을라구요.”
먹고 싶을 때 먹는 것도 잘 먹는 방법이겠지요.
너무 커서 파도 파도 끝을 알 수 없겠다는 큰 게 있는가 하면
꼭 네 살 승욱이 손가락 같은 것도 있고,
급한 호미질에 상처 입은 것도 꼭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이것도 좀 해줄 수 있어요?”
종대샘은 이제 흙집해우소 갈무리를 시작할 모양입니다.
안으로 흙벽을 정리하겠다고 벼르던 가을이었지요.
숨꼬방 앞에서 작은 둔덕을 이루고 있던 흙더미엔
어느새 후루룩 자란 풀들로 떼 입은 산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 흙을 퍼내 쓰려는 겁니다.
어른들은 풀을 뽑아내느라
아이들은 거기에도 삶터를 꾸린 개미집을 좇느라
야단이 아니었지요.
백합나무 아래 평상에 걷어온 고구마줄기 늘여놓으니
흙더미를 떠난 이들이
자연스레 줄기를 떼고도 있데요.

점심으로 국수를 말아내고
낮잠 같은 달콤한 여가를 즐겼습니다.
그네에 앉았기도 하고
잠시 책방 소파에 몸을 뉘기도 하고
책을 보거나 산책을 하거나
아이들끼리 모여 나무토막을 쌓거나...
이맘 때는 안이 좀 스산하다 싶지요.
난로 머잖아 다시 들여야겠습니다.

오후.
고래방 피아노 너머 편이며 간장집, 큰대문의 문설주, 장독대 곁,
그리고 가마솥방 무대 너머 뻗어오른 담쟁이덩굴 앞에
사람들이 나뉘어 섰습니다.
열매를 거두지요.
이런, 해야지 해야지 하며 또 때를 넘긴 일입니다.
어느새 풋풋했던 열매 다 쪼글거리고 있었지요.
그거라도 효소로 써볼까 한다지요.
사람들이 담에서 멀어질 쯤
부엌 뒤란 평상에 삶아놓은 고구마줄기를 내놨습니다.
자연스레 엄마들과 딸들이 붙어 껍질을 벗겼지요.
그렇게 일하고 있으면
우리가 먹고 사는 일에 관여하는 것에
얼마나 낮은 가치를 매기고 사는지 새삼 압니다.
온 사람들이 모여서
겨우 한 다라이 네 뭉퉁이 건졌더랬지요.
(아, 챙겨 보낸다는 걸 잊었습니다.
우리야 잘 먹겠지만 가서 먹으면 얼마나 별미일까요....)
잘 무쳐 저녁밥상에도 올렸더랍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마당을 채우고 바빴습니다.
괭이를 들고 흙더미에 가 있는가 했더니
손수레 둘을 끌어내 어린 승욱이를 너도 나도 태우고 있었지요.
종대샘이 만들던 벽 바를 흙물 휘젓는 일도
재미 붙인 성배며 놀이가 되었습디다.
혼자 남은 성배는 그만해도 되련만
‘짜증나’를 연발하며 또 젓고 있던 걸요.
일찍이 웃긴 녀석인 줄 모르지 않았지만
오늘도 우리를 웃겨주고 있었지요.

날이 조금씩 꾸물럭거리고 있었고
숲에 가자 가자 하면서도
걸음을 떼지 못했더랬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엉덩이를 붙이고
손톱 검도록 고구마줄기를 마저 벗기는 일로
저녁을 맞고야 말았지요.
티벳길을 걷거나 저수지를 오르거나
큰 형님 느타나무를 돌아 마을 길을 잠시 돌아도 좋았으련,
돌고 있는 감기 때문인지
아니면 느린 시간을 흘러다녀보는 건지
이러저러 어두워지고 있었답니다.

저녁에는 들고 오신 것들을 풀어
밥상에 올렸습니다.
현곤이네서 온
바로 익히면 되도록 스테이크와 돈까스 봉투도 있었지요.
어찌나 넉넉히 싸오셨던지,
먹고도 남았더랍니다.

다시 달골에 오르고 춤명상(명상춤)을 하고
난로에 불을 지폈습니다,
고구마가 익을 만큼만.
한 소끔이면 된다는 말에 정말 한소끔만 넣었다가
또 한 소끔, 또 한 소끔.
해보지 않은 일이 그렇지 싶습니다.
저마다 준비한 이야기를 풀고 있을 녘
그제야 익은 고구마였지요.
아이들은 검댕이 얼굴 가득 묻히고 고구마를 비우고,
어른들은 다시 둘러앉았습니다.
이야기는 역시 교육으로 모이기 마련이지요.
“다 '극성'이죠.”
제도교육에서 치맛바람 못잖게
대안교육을 향한 것도 다르지 않게 극성이라는
한 어머니의 냉정한 진단에 이구동성이었습니다.
"대안교육을 알아보다가 결국 제도교육을 선택했고,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서 고민이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구요."
늦게 귀하게 얻은 아이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당신의 도시 삶에 대해서도
이제나저제나 변화의 지점을 찾고 있다시기도 하셨지요.
제도 안에서 대안교육현장으로 불리는
남한산초등에 이어 아산의 거산과 송남에 대한 얘기도 나왔습니다.
아산,
마침 낼모레 아산에 갑니다.
바로 그 하나의 학교사람들을 만날 약속도 있지요.
왜 언론에선 거산을 더 주목하나
실제 현지에선 송남이 더 각광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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