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5.달날. 맑음

조회 수 976 추천 수 0 2009.10.20 00:52:00

2009.10. 5.달날. 맑음


이른 아침부터 도서관에 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문을 여는 그 시간부터 벌써 빈자리가 드물데요.
수험생들이 참말 많습디다.
급히 보내야할 문서 하나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기침 잦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들 옆자리가 비었데요.
슬그머니 사라진 것입니다,
앞자리도 저 건너편으로.
다 신종플루 때문이겠다 짐작합니다.
주말에 목을 쓸 일이 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이비인후과를 갑니다,
당장 목은 좀 다스려야겠다 하고.

“안 가면 안돼?”
한 달여 제도학교를 경험하던 아이는
꼭 가야겠냐고 끊임없이 엄마를 설득해오고 있었는데,
사람이 어디 하고픈 것만 하고 살더냐며
더 가보라 하였고,
그러는 사이 너무 힘에 겨운 날은 그냥 쉬라고도 하였으나
그럴 땐 외려 저가 뭔가를 하기로 했으면 지켜내야 하는 거라며
꾸역꾸역 나가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엊저녁 온 가족 다 모였을 적
심각하게 아이의 의견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고들 하였지요.
고만 가라 하였습니다.
이제 자기도 뭔가 가닥이 잡혔고
스스로 하는 공부를 외려 더 잘해나갈 수 있겠다 합디다.
서둘러 교무샘과 담임샘께 만나자는 전갈을 간밤에 했고,
오늘 만났습니다.
들어갈 때도 절차가 있었다면
나올 때도 절차가 있겠지요.
있으면 그걸 또 지켜야할 겝니다.
그렇지 못한 예를 물꼬에서 너무나 무수하게 봐왔던 터라
더욱 그 절차를 잘 밟고 싶었지요,
혹 누구에게든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학교에 머문 기간은 짧았으나
아이들이(어른 역시도) 서로 헤어질 준비를 하는 한 주가 되기로 했고,
오는 쇠날 마무리를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당장 아니 갔으면 싶던 아이가
이번 주 끝까지는 가기로 했노라 전하니
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입디다.
마음 떠날 때 몸이 어떤 지 우리 너무 잘 알지 않나요.
쉬운 일이 아닐텐데 기특하다 싶었지요.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우리 어른들보다 늘 훨 낫다 싶은 순간이 어디 한둘일라구요.
게다 다른 아이들에게 미리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그냥 함구합디다.
학교를 계속 다녀야하는 아이들이 불편치 않았으면 하는
나름의 제식의 배려로 말입니다.
어쨌건 아이는 그것이 싫었든 좋았든
여러가지를 배운 시간이 되었을 겝니다.
무엇보다 참 좋은 어른들이 거기 계셨거든요.
그 은덕에서 얻은 게 참으로 많았을 겝니다.

달빛 내리는 산을 헤매고 들어왔습니다.
자정 다 되어 말입니다.
목 놓을 일이 있었더랬습니다.
남 보기 민망하니 산 아래서 할 일은 아니었지요,
그것도 대낮이라면 더욱.
건넛산에 깃든 집나간 개들이 짖고
마을의 개들이 따라 울고
어디선가 놀란 짐승들이 수런거리고
새들이 와서 잠을 깨 곁에 와서 위로하고...
문제는 나였구나,
나이 마흔 훌쩍 넘기고 거울 앞에 섰습니다.
떠나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온 몸을 누르는 끊임없는 반복이 있었고
나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관계들까지도 망치고 만다는 성찰이 있었고
결국은 세련되지 못한 마지막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임을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있었고
그래도 별반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이 있었고
그런 속에 지나간 아름다운 시절을 잠깐씩 회상도 하고
그러저러 날들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흔도 더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침 와 있던 두 통의 글에 답글을 보냈지요.
긴 시간을 좋은 협력자였던 동료에게,
또 물꼬의 오랜 논두렁이었던 지지자에게.
‘밤새 산골짝을 헤맬 일이 있었습니다.
온 데가 할퀴고 눈은 붓고 와 있던 감기는 깊어지고...
앉아 하는 수행도 있지만,
그리 하는 것이 수행이라면 수행이었지요.
사람 될라믄 멀고 멀었다며 살아갑니다.
... 아이들 보며 산다,
모진 세월 혹은 시간을 엄마들이 그리 살기도 했을 테지요.
아이가 없으면
때로 목숨도 저버리겠다 싶은 순간도 있습디다.
언제 한 번 보지요...’

그래도 나아질 것이란 기대는
우리 삶에 얼마나 매력적인 추동력이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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