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6.불날. 맑음

조회 수 901 추천 수 0 2009.10.20 00:53:00

2009.10. 6.불날. 맑음


아이들은 길을 쉬 잃는다지요.
자신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주 길을 잃고 만다지요.
왜냐하면 그 순간
아이들은 앞으로만 보고 가기 때문이랍니다.
길을 잃었다 싶을 때 흔히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요?
일단 멈춥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찬찬히 가늠을 해봅니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왔던 길을 되짚어야 하지요.
저도 삶에서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럴 땐 정신없이 앞으로만 걸었음을 깨닫고
멈춰섭니다, 꼭 이 몇 해처럼.
그리고 조심조심 나아가기도 하지요,
다시 주춤거리기도 하고.
그러는 속에 길을 다시 만날 테지요...

읍내 나가는 길에 마을 할머니 한 분 태웁니다.
어떨 땐 갈 길이 너무 바쁘거나
더러 실은 짐이 지나치게 많아 사람 앉을 자리조차 없을 때는
창문 열고 큰 소리로 죄송하다 하고는 쌩 달려가지요.
그런데 그렇더라도
어떻게든 꼭 태워드려야지 싶은 어른들이 또 있습니다.
우리 마을 조중조 할아버지댁 할머니가 그러한데요,
해마다 달인 간장을 넣어도 주시고
이것 저것 살펴주시는 마음이 여간 두텁지 않으시답니다.
오늘은 정말 정말 없이 살았던 시절 얘기를 듣습니다.
두 분 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렵게 어렵게 자식 낳아 키워내던 시절,
그때 지금 물꼬가 있던 자리로 자식이 학교를 다닐 적
하선생이라 불리던 이가 그랬다지요.
아이들이 배우고 나면 살기가 나아질 거다, 질 거다, 라고.
“... 자식들 커놓으니 힘이 돼야.”
물꼬가 처음 대해리로 들어와 살 적 초등학생이던 아이는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자식 거느린 나이가 되었지요.
아버지를 어찌나 받드는 자식인지요.
제가 다 고맙습디다.
그리고
그리 힘겨운 세월에도 결 고운 마음을 잃지 않고 당신이 사신 걸 보노라면
제 마음결도 덩달아 펴진답니다.
계셔서 고마운 당신들이십니다.

같이 걷다가 곁의 아이를 물끄러미 보았습니다.
내참...
외려 어른인 제가 짜증을 내고
그걸 아이가 받아주며 지낸 시간이 허다했습니다.
그가 어른입니다.
그러면서 도리어 그를 꾸짖어왔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나무라기만 했지
제대로 대체행동을 일러주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저를 잘 돌아보는 시간에 이르도록
기다려준 아이가 고맙습니다.

몇 달을 머물고 있던 이가 떠날 때가 되었고,
그리고 떠났습니다.
이제 귀농할 준비가 좀 되었다 하니 고마울 일이나
당장 손이 비는 우리는 그저 아쉽지요.
잘 뿌리내리길 바랍니다.
지내는 동안 많은 보탬이었다마다요.
무엇보다 소사아저씨의 곁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내일이면 또 한 동안 머물 새 식구들이 들어온답니다.

미국 저널에 보낸 기락샘의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고맙습니다.
뭔 대단한 일을 한다고 멀리 있으니 남편 옷가지 하나 챙겨주질 못하는데
외려 늘 아내 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그가
애쓴 결과를 그리 받으니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 거,
그게 좋은 관계를 만든다는 벗의 말이 생각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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