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2.달날. 까물룩거리는 하늘

조회 수 963 추천 수 0 2009.10.28 17:43:00

2009.10.12.달날. 까물룩거리는 하늘


달포를 제도학교를 경험했던 아이가
다시 산골에서 하루 하루를 맞게 되자
정작 제가 여유가 생겼습니다.
읍내까지 태워나가야 했더란 말이지요.
아이는 읍내를 나가는 동안 하지 못했던
논두렁돌기를 시작으로 산골 아침을 열었답니다.
그리고 산골에서의 이번 학기의 속틀,
하루흐름과 한 주 흐름을 짰지요.
"이번 주는 일단 쉬고..."
여독을 풀듯이 말입니다.
거친 긴 여행을 다녀온 듯한 그입니다.

지난 칠석에 개봉한 효소가
그간 물꼬에서 내던 맛에 영 미치지 못했더랬습니다.
혹여 쏟아버리기라도 할까,
어차피 효소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숙성하고
혹 이물질이 들어갔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그 성분이 분리되어
위에 오른 것들을 걷어내면 되기에
항아리가 있으시다면(없다면 원래 용기 그대로) 부어서
서늘한 곳에 놓고 두어 달 뒤에 드시라 전갈을 드렸지요.
그런데, 마침 2007년산 항아리 하나 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같이 살던 이가 정성스레 담았던 것이지요.
죄송한 마음을 좀 덜까 하고
한 통씩 보내드렸습니다.
거듭 죄송하고,
그리고 물꼬에 대한 관심 늘 고맙다 하였지요.

얼마 전 산골에 닿은 귀한 그림 한 점에 대해서도
화답을 하였습니다.
호두를 좀 보내드렸지요.
나눌 게 있어 고마운 산골살이이지요.
곱게 물든 담쟁이 잎 하나도 얹어 보내고 싶었으나
몸은 마음을 늘 따르지 못합니다.
초록 지쳐 단풍인데
마음도 그리 밝으시라 바램만 담았습니다.

가끔 마을 어르신들이 건너오십니다.
인근에 땅이 나왔노라는 소문이 얹혀있기도 하지요.
최근 몇 해는 마을 안에 땅이 없더니
어렵게 농사 꾸역꾸역 지으시던 노부부가
드디어 땅 팔아 당신 삶의 주름을 좀 펼까한다고
정말 오늘 바로 그 땅 얘기가 묻혀왔더랍니다.
길 따라 난, 말하자면 돈 가치 큰 땅이지요.
땅 값이란 게 그렇게 길 접근도에 따라 다릅디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가치 있는 것이 다른 이에겐 다르기도 하지요.
세상 사람들한테 다 가치 있어도
내게 무소용인 것도 있지 않던가요.
물꼬에게 길가 땅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지요,
사두는 땅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요.
젤 큰 까닭이야, 우리가 무슨 노는 돈을 지녔을려나요.
그저 이렇게 말 넣고 말 받고
덕분에 서로 모여 한바탕 곡주 한 잔 돌리며
일상의 버거움을 잠시 터는 거였더라지요.

특수교육을 공부하는 이들의
수업분석 시험에 쓰인 시험지를 보게 되었는데,
퍽 '영리한' 시험이었더랍니다.
공부를 하지 못했어도 적당히 쓸 수 있도록,
한편 공부를 한 사람은 그 만큼 또 성적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한
무릎을 치게 하는 시험이었더이다.
그런 게 또 교수자가 가진 지혜 혹은 실력 아닐지요.
찬찬히 평가지를 다시 살펴보게 됩디다.

가까운 이웃 가운데 두 분이나 암을 앓고 계십니다.
저마다 좋은 음식이 있을 것이나
유기농 무청은 공통적으로 좋다 합니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딱히 도울 수 있는 건 없고
안타까워하던 차에 해줄 수 있는 일을 알게 되어 기뻤지요.
물꼬 밭의 무를 뽑자면 아직 시간이 있을 것이라
상주에서 채식하는 이들한테 무를 공급하는 이랑 닿아
오는 주말 솎아내는 무를 좀 사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찾고, 그것이 구해지고 하는 일들도
기적과 무엇이 다를까 늘 생각한답니다.
누군가에게 우리를 쓰일 수 있게 되는 일도 기적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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