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몽당계자 여는 날, 2009.10.23.쇠날. 맑음. 상강

조회 수 1105 추천 수 0 2009.11.07 09:20:00

10월 몽당계자 여는 날, 2009.10.23.쇠날. 맑음. 상강


승냥이는 산짐승을 잡고
초목은 누렇게 변하며
벌레들은 땅으로 숨어든다지요, 상강(霜降)에는.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꼴이 말이 아니게 보낸 시간들,
감기를 무려 한 달을 앓았습니다.
아이들 올 시간 되니 비로소 팔팔해졌지요.
옷도 정상적(?)으로 입고 말입니다.
완전 한 겨울이 온 몸을 감고 있었던 달포였거든요.

‘가을길 비단길’이라던가요.
가을 햇살에 부서지는 색이 너무도 고운 길을 따라
아이들 무사히 들어와 점심 때건지기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빠져나오는 아이들을
희중샘이 바로 맞아 버스에 태워 들어왔네요.
한 아이가 오지 못했고
늦게 온다는 또 다른 아이도 다음 계자로 오라 하였으니
여덟이던 아이들이 건너가는 계자답게 여섯이 전부입니다.
어른이 두 배나 많은 계자가 되겠네요.
오래, 그리고 자주 봐서
마치 물꼬에서 자라는 아이들 같은 현진이와 성재와 재우,
그리고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인연인 태형이와 현준이.
다행히도 이런 단촐한 즐거움도
북적거리는 여느 계자 못잖다고들 합니다.

한 댁에선 선물도 같이 들어왔습니다.
늘 고마운 당신이십니다.
물꼬는 무엇을 나눠드릴 수 있을지요?
때마다 아이 편에 이렇게 요긴한 선물을 보내십니다.
부모님들이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돌아가며 그리 보내십니다.
늘 이곳 살림을 나눠 살아주고들 계시지요.
고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역시 ‘우리 아이들’인 게지요.

이곳에 사는 열두 살 류옥하다한테 자주 미안합니다.
예서 살다보니 행사라도 있을라치면
마지막 순간까지 허겁지겁 어른들을 도와야 하는 그입니다.
오늘만 해도 살구나무 아래 평상을 미처 닦지 못해
하다에게 걸레를 들려 보냈습니다.
멀리서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 소리가 나면
이곳은 늘 공연준비를 하는 마지막 순간 같습니다.
아무리 준비를 해두어도 꼭 한 두 곳이
막판에 그리 눈에 띄지요.
그걸 애한테 맡긴 것입니다.
여유로이 친구들을 맞으러 가라 하면 좋을 걸,
미안습니다.

이번 몽당계자는 곳에 따라 시간을 나누어 봤습니다.
쇠날: 오후는 ‘밭에서’, 저녁은 ‘달골(창고동)에서’,
흙날: 이른 아침은 ‘달골에서’, 오전은 ‘숲에서’, 오후는 ‘집에서’
해날: 이른 아침은 역시 ‘달골에서’, 학교를 내려온 뒤엔 ‘나무에서’

‘밭에서’입니다.
점심을 먹고 달골 산 아래 밭에 들어
야콘을 캐면서 나절가웃 보냈지요.
호미에 낫에 괭이까지 들고 갔답니다.
물꼬도 처음 심고 거두는 야콘이지요.
안동(봉화가 더 가까웠던)에서
지난 4월 빈들모임을 다녀갔던 박성호님이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해바라기 대같기도 하고, 삼 대같기도, 그리고 담뱃잎 같기도 한 야콘 대는
아이들 키에 이르고 있었지요.
먼저 어른들이 대부터 벴습니다.
“그건 한 쪽으로 모아.”
야콘잎도
역시 요새 재미 한창 붙이고 있는 효소항아리에 들어갈 것이지요.
너무 몰려 호미가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흙을 뒤에 앉은 다른 이의 얼굴에 튀게도 하고...
그러면서 밭의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고구마 같애요.”
“맛은 배에 더 가깝지.”
200주를 심은 데다
몇 포기 죽기도 하고 곶감집 뒤로 몇 포기 실험삼아 심기도 해서
그리 많은 양은 아닌지라
딱 아이들 대여섯이 거두기 좋았지요.
햇발동에 있던 두어 가지 것으로 참을 챙겨 밭가에 내려놓고
저녁을 준비하러 먼저 내려왔답니다.
“어!”
희중샘도 야콘 캐느라 사진기를 놓고 갔지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제 늦도록까지 학과 행사로 지칠 만큼 지쳤을 그인지라
아무 생각 않고 그저 몸만 열심히 쓰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좇아가 사진기에 몇 장면 담았지요.
거의 다 캤던 아이들,
“연출, 연출!”
하며 사진기 안으로 들어왔더랍니다.
캔 야콘을 이랑에 늘여놓고 거기 비닐을 씌웠습니다.
그렇게 한 주를 숙성시킨 다음 저장고에 넣으려지요.
그래야 단맛이 만들어진다 합니다.

뻑뻑한 허리를 펴고
마을로 아이들이 돌아옵니다.
밭일 좀 했다고 배고프다며 김도 빠지지 않은 밥솥 앞을
어찌나 서성이던지요.
“왜 이렇게 맛있게 하시는 거예요?”
“우리를 물꼬에 빠트릴라 그러시는 군요.”
“그러면 저희들 안가요.”
말도 어찌나 예쁘게들 하는지
이런 아들들(그러고 보니 모두 남자들이네요)이라면
덥석 데리고 살다마다요.

저녁을 먹고 초승달을 등불 삼아 달골에 올랐습니다.
(달골 식구들은 오전에 집을 비우고 서울 오르셨지요.
다음 주초에 가시려던 걸음인데
이곳의 번잡함을 헤아려 일찍 서둘러주셨습니다.)
바로 그 초승달을 몸으로 그려보기도 한
춤명상(명상춤)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춤명상을 이끄는 소품들은
갖가지 가을 낙엽들이었답니다.
가을을 안으로 들였던 게지요.
“명상이란 나쁜 것을 몰아낼 뿐만 아니라...”
“감기두요.”
현준이가 말을 달았습니다.
열이 나고 몸도 가라앉고 있었거든요.
아이들은 춤명상을 끝내고 햇발동으로 건너와
'안에서 하는 술래잡기'로 더그매(다락방)를
온 몸으로 걸레질 하였더랍니다.

여럿 감기 기운들이 있습니다.
성재가 기차에서부터 볼이 아팠다 합니다.
혹 볼거리이기라도 하려나 살핍니다.
볼이 부었는데, 열은 없습니다,
계속 살펴보자 합니다.
얼음주머니는 너무 차가워 잠을 깨울 듯하여
밤에 찬 수건을 서너 차례 대주었습니다.
태형이 감기 기운으로 미열이 있고
현준이가 열이 많이 납니다.
둘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요.
현준이 이마엔 밤새 찬 물수건을 갈아주었는데,
선잠을 자느라 계속 깼다가
새벽녘에 아주 곤히 잠이 들데요.

“일찍 몸을 잘 쉬어주고 낼 한껏 놀아보자.”
그렇게 아이들을 방으로 몰았지요.
아주 잘 생각이 없던 녀석들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자라 하니 또 금새들 잠이 들었습니다,
곤하기도 할 테지요, 이른 아침부터 집을 떠났을 것이니.

예쁜 하루였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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