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7.불날. 흐리게 시작터니 종일

조회 수 1054 추천 수 0 2009.11.13 21:29:00

2009.10.27.불날. 흐리게 시작터니 종일


가을 아침이
마치 긴 겨울을 지난 봄 아침 같습니다.
바람이 달았지요, 훈훈했습니다.
은행잎은 더욱 짙게 물이 들구요,
둘러친 산이 들썩이데요.

모과를 땄습니다.
앞집 할머니가 따 가라했지요.
해마다 떨어지길 기다렸다 어차피 우리가 주워오던 모과랍니다.
순전히 이 모과 때문었지요,
책방에 좇아가 시경(詩經)을 찾은 것은.

投我以木瓜 나에게 모과를 던져 오기에
報之以瓊琚 어여쁜 패옥으로 갚아 주었지.  
匪報也 꼭이 보답하고자 하기보다는
永以為好也 길이 사이좋게 지내보자고.

投我以木桃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 오기에
報之以瓊瑤  어여쁜 구슬로 갚아 주었지.
匪報也  꼭이 보답하고자 하기보다는
永以為好也  영원히 사이좋게 지내보자고.

投我以木李  나에게 오얏을 던져 오기에
報之以瓊玖 어여쁜 옥돌로 갚아 주었지.  
匪報也  꼭이 보답하고자 하기보다는
永以為好也 영원히 사랑하며 지내보자고.

고대 중국에서는 여자가 사모하는 남자에게 과일을 던지면
남자가 허리에 띠고 있던 구슬을 보내어 혼약을 한 풍습이 있었다지요.
사소한 선물에 대해 훌륭한 답례를 받는다는
투과득경(投瓜得瓊; 모과를 선물하고 구슬을 얻는다)도
그 풍습에서 나온 말이지 않았으려나요.

식구들이 잠깐씩 짬을 내 깎아놓은 감을
아침 저녁 틈틈이 걸고 있답니다.
올해는 곶감집 감타래를 쓰지 않습니다,
곶감집을 더 이상 물꼬가 쓰지 않으니.
해서 이곳 저곳 학교 처마에 걸고 있지요.
굳이 다른 일처럼
따로 시간을 정하고 해내야 될 일까지는 아닙니다,
곶감이야 있으며 먹고 없으면 또 없나 부다 하는 것이어,
그것 아니어도 겨울로 가는 길목엔 늘어선 일이 많기도 하여.

교실 한 칸을 황토방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지난 해 가을께던가요,
목수샘의 흙집교육을 물꼬가 지원해주었더랬지요.
그 보답이라 합니다.
먼저 벽을 바르고 있습니다.
나무를 덮어둔 천장은 어찌 할 수가 없지만
바닥까지 덮고 나면
온기가 더할 테고 무엇보다 건강에 더욱 좋지 않겠는지요.

꼭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어른도 가끔 머리 안에서 좌절을 하지요.
아이도 그럴 겝니다.
더구나 주류사회랑 동떨어지게 살아가고 있다면
어느 틈에 불안이 엄습하기도 쉬울 테지요.
산골에서 살고 학교도 가지 않고 홀로 공부하는 아이가
밤에 좀 우울했더랍니다.
마침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구절들이 생각났지요.
(예순이 넘어 쓴 소설을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자가 출판했는데
지금은 20여 개 나라에까지 번역되었다던가요.
궁중요리사가 부랑아를 데려다 제자로 키우기 시작했답니다.)
자식에게 어차피 긍정적일 수밖에 에미가 하는 말보다
책의 어떤 구절이 마치 객관의 얼굴을 할 수도 있지 않던가요.
그래서 때로 하고픈 말을
책의 어느 쪽을 펼쳐 아이랑 같이 읽고는 한답니다.
바로 오늘도 그러하였더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불운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네 인생의 등불은 네 안에 있어.”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야.”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성취한 결과물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려는 분투, 잘하고자 하는 의지, 끈기 있는 노력도 고려해야 해.”
그것은 아이 뿐 아니라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유한 존재....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
"우리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면, 예기치 못한 힘을 발견하게 된다.
위로 올려다보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보아라.”
그리고, 아주 귀한 한 문장을 마지막으로 읽었지요.
“용서하면 자유를 얻게 된다!”

아, 그런데, 달골에 물이 안 나옵니다.
이런,
그래도 달골 식구들이 서울 나가고 없을 때여서 다행입니다.
예전에는 계곡 도랑에서라도 퍼서 썼는데
그것도 오래 가문 날들에 거진 말라버렸네요.
달골에 자려고 올라간 이들이
한 밤 다시 학교로 내려와 씻었더랬습니다.
무슨 일이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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