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 6.쇠날. 볕 좋은 가을날 / <우리학교>

조회 수 1017 추천 수 0 2009.11.18 22:12:00

2009.11. 6.쇠날. 볕 좋은 가을날 / <우리학교>


입동입니다.
입동 후 석 달이 겨울이라 하였습니다.
물이 비로소 얼고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고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던가요.

달밤에는 모두가 집을 비운다
잠 못 들고
강물이 뜨락까지 밀려와
해바라기 마른 대궁을 흔들고 있다
밤 닭이 길게 울고
턱수염이 자라고
기침을 한다 끊임없이
이 세상 꽃들이 모두 지거든
엽서라도 한 장 보내라던 그대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서
지금 쓸려가는 가랑잎 소리나 듣고 살자
나는 수첩에서 그대 주소 한 줄을 지운다

(이외수의 ‘입동’)

밭딸기를 옮겨 심던 일을 마무리 하고
오후에는 쌀을 찧었습니다.


아이랑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봅니다.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 1세들은 우리말과 글을 몰랐던 자녀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불편이 없도록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웠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는 80여개의 ‘조선학교’가 남아 있다. 대부분 고향이 남쪽인 재일조선인이 3, 4대까지 이어지는 동안 한반도 남쪽의 사람들에게 ‘조선학교’는 잊혀진 존재였다.’
자막이 먼저 올랐지요.
2004년 혹가이도 삿뽀로시 눈에 파묻힌 ‘우리학교’(그들은 그리 일컫습니다),
그들은 왜 우리학교로 가는 걸까요?
전쟁이 끝나고 학교를 세웠던 초창기,
우익들에 맞서 학교를 지킨다고 돌아가지 않고 남학생들은 싸우고,
그래서 여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입을 수 있었다 합니다.
“일본에서 민족성을 지키는 것과 한국 내에서 지키는 것은 다릅니다.
한국에선 내면을 지키면 지키고 있는 거지만
일본은 내면 뿐 아니라 외면에서도 지켜내야지 안으로 침투하지 않습니다.”
“옷(치마 저고리), 춥지만 조선 사람으로서의 의식이 커지고 용기를 줍니다.”
누구는 이 학교 오지 않았다면 깡패 아니면 소년원에 갔을 거라 하고,
누구는 그 전에 나를 몰랐으나
여기 동무들도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
(자신 또한) 떳떳한 조선 사람으로 되자는 의식이 아주 강하게 자각 되었다 합니다.
등교하는 아이들 모습 위로
그들에게 걸려오는 협박전화가 담겼더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학교로 향하지요.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우리는 학교로 가요
통학길이 멀다 어머니는 걱정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도 우리는 조선사람
우리의 학교가 기다립니다.’(노래 ‘버스를 타고’)

역도부와 축구부와 농구부도 있습니다.
이들이 전국 대회를 나갈 수 있게 된 것도 겨우 90년대 후반입니다.

“이 아이들은 축구에 재능을 지닌 아이들도 아니고 축구에 미래를 건 아이들도 아니다. 이국 땅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온 1세분들과 조선 사람이 조선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그 평범한 사실을 어렵게 실천에 옮겨주신 부모님들과,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선생님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이름을 정답게 불러주는 동무들,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 고개를 들고 당당히 살아가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건 바로 자기들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내레이션)

일반 일본학교 운동부와 달리 후보 선수 없이 전원이 뛰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반칙 퇴장을 우려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소극적인 플레이를 몸에 익힌다는
담담하여 나래이션은 서러웠습니다.
이들은 학교 빛내기 위해, 자기 이름 떨치기 위해
전국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동포사회하고 동포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다는 사명으로 뛰고 있었습니다.
“동포가 있어서 축구를 할 수 있다.
학부모가 열심히 생활하고 계시기 때문에 축구를 할 수 있다.
학교가 있기 때문에 축구를 할 수 있다.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주자 마지막까지
여기에 모두 백을 하자.”(박유사 선생)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일도 타인을 위해 라는 생각,
그것이 아주 행복한 길이구나,
이곳에서 축구코치가 된 전 일본 우리학교의 유일한 일본인이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수십 명인데,
선생님들은 이들에게 오후엔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고,
밤에는 함께 놀다가 잠이 들고,
아이들을 온 마음으로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잘한다, 문지기는 언제 성장할지 모른다, 그거 믿고 해라.(박유사선생님이 그러셨다.)
감동하지요, 인정해주는데 얼마나 기뻤던지, 얼마나 감동했던지...”(축구부 문지기)

통일은 이곳에서 현재형입니다.
“북도 남도 내 나라,
남이나 북이나 하나로 되면
하나로 되면 강하다, 우리!”(동포 2세)
“이것이 언제인지 통일기가 되는 시간이 온다!”
체육 행사에서 인공기를 걸던 고등부의 말입니다.
“지금은 통일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남한은 방문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선생님 한 분이 하신 대답이지요.
사라진 조선, 기호로서의 조선을 국적으로 여전히 쓰며
무국적자로 남아있는 이들에게
통일은 더욱 절실한 염원입니다.
남한이 이데올로기 공세만 퍼부을 때
어려운 가운데도 북한은 꾸준히 교육 원조를 했다 합니다.
한일협정이후 남한 국적 선택자에게 혜택이 늘어나면서
국적을 남한으로 택한 이들은
그래서 고향은 남쪽이지만 조국은 북쪽이라 한다지요.

고등부 아이들이 졸업여행으로 조국방문을 합니다.
“우리의 존재, 재일동포를 환영해주는 모습에 기뻤습니다.”
“이제 여기도 나도 같은 민족이지.”
“아침 햇빛이 우리 조선은 고왔습니다.”
‘건물이나 가난 같은 외면이 아니라’ 아이들이 보고 온 조국은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고민을 나누고
정말 사람다운 사람이 고운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일본 살며 나쁜 영향을 받는데
(조국에 가니)정말 자기 마음이 무엇인가 빨래해주는...”
“눈이 다르다, 빛나고 있다.”
“모두 친절하고 나쁜 사람이 없는 감...
(우리가 조선인으로 잘하지 못하는 것도 많은데)
재일 조선인이 이국땅에서 우리 민족성을 지키고 있다고
잘하고 있는 것만 말한다.”
판문점에도 간 이들은, 38선 무슨 장벽인 줄 알았는데
이 작은 턱으로 갈라져 서로 총을 맞대고 있음에 슬퍼했습니다.
“조국에 가서 정말로 나는 조선 사람이어 자랑스럽다.
많이 먹고 자는 것은 행복이 아니죠.
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행복이 아니죠, 별로.
그것을 알고 있죠, 인민들은.
정말의 행복 눈을 봐도 깨끗하고...”
학교 이름을 가리고 우리말을 못 쓰고
치마저고리 찢기던 기억이 있던 이들에게
조국에 가니까 우리 저고리를 입을 수 있어서,
우리 말 우리 노래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했습니다.

“학교가 없으면 민족교육이 없고
민족교육이 없으면 민족성도 지키지 못하고
학교가 있어야 동포사회가 든든한 거 아니가 끝까지 지켜나가자.”
그래서 아이들을 우리학교에 보내고
그래서 아이들은 우리학교에 가며
자라서 우리학교 교원이 되려합니다.
그들은 졸업식에서
선생님들과 보낸 12년 간의 추억을 낱낱이 추억하며
‘조선의 뜻 민족의 넋으로 어엿한 조선청년으로 자라났다’고
아버지 어머니 사랑과 동포들의 협력, 선생님들의 정열에
깊이 보답하는 글들을 읽지요.
하지만,
해마다 학생수는 줄고,
과거 학생들로 늘 시끌거렸다는 기숙사는 썰렁하고,
선생님들은 적은 월급으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나갑니다.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선가 고등부 학생 하나가 대답하지요.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거 평화로우면서
누구인가가 아래든지 위라든지 밑이라든지 아니고
모두가 평등하게 모두가 자주로서 가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조국에 없고 일본 땅에 있으니까
일본 땅에서 우선 재일 조선인 지켜나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지금 남한 땅에서 이런 꿈을 가진 청년이 얼마나 되려는지요,
있기는 하련지요?

아이랑 ‘정신’에 대해 얘기 나누었습니다,
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정신을 살리는 교육에 대해서 말입니다.
오랜 기간 이 땅에서 그것을 북한의 세뇌라 했습니다.
그런데 남한은 자본에 세뇌당한 거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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