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4.달날. 맑음

조회 수 999 추천 수 0 2009.12.28 08:07:00

2009.12.14.달날. 맑음


잠시 올랐던 기온이 다시 서서히 아래로 내려갑니다.
아이가 추위를 타지 않아 다행입니다.
윗도리만 하더라도 내복도 속옷도 없이
달랑 티셔츠 한 장입니다.
그마저 떨고 있다면
이 산골이 얼마나 추울 것인지요.

그는 산골살이의 자세를 압니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당신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때도 된다 하시기
잠시 산을 둘러보러 다녀왔더랬습니다.
학교를 들어서는 아이의 손에
산에서 끌고 내려온 나무 하나 들려있었지요.
겨울날 결코 빈손으로 집에 들어오지 않는,
작은 막대기 하나라도 땔감으로 들고 오는.

아이가 해주는 배추전을 먹었습니다.
안 익으면 안 익은 대로 먹으면 될 테지요.
부엌바닥이 지저분해지면 치우면 될 겁니다.
프라이팬이 타면 수명이 좀 줄어들 뿐이지요,
못 쓰게 되면 그만 쓰면 되구요.
그러니 그냥 하라면 될 겝니다.
그런데, 멀쩡하던 걸요.
첫 장은 밀가루가 좀 많고
뒷장은 기름이 좀 많았더랬지요.
그래도 맛납디다.
저녁 설거지도 그가 합니다.
그런 일도 그는 놀이로 합니다.
“엄마, 엄마!”
한참을 비눗방울을 불어 올리데요.
정신없이 일들이 몰아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노닥노닥 하는 날들도 있지요.
아이랑 나란히 불가에 앉아 책장을 넘기기도 하였더랍니다.
고마운 시간들입니다.

자주 바람이 거칠고, 많습니다, 대해리의 겨울.
빨래방 비닐이 들썩였지요.
소사아저씨가 장순이 앞에 있던 돌들을 옮겨
비닐들을 주욱 말아넣었습니다.
너무 단단히 해두면 나중에 치우는 게 일이지 않겠냐 하지만
바람 그리 거치니 그만큼 해야 한다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중 일은 나중 일이지,
분명 지금 일이 아니지 않겠는지요.

장을 덜 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 됩디다.
식구가 없어서도 그렇겠지만
산골살림이라 가능한 게지요.
된장 있고 고추장 있고 김장 있는 겨울이면 더합니다.
아, 시래기도 있군요.
묻어둔 무도 있네요.

새끼일꾼계자(청소년계자)를 열기로 합니다.
계자 전에 하려니 올해는 너무 더딘 알림이 되었지요.
그래서 이틀만 하기로 합니다.
쉼, 일, 성장, 나눔이라 그 목적을 두었는데
모여야겠다 생각한 배경이 있었지요.
계자에 새끼일꾼으로 오는 것이 이미 훌륭한 영적성장의 기회이지만
그 계자도 준비를 하면 더 좋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만이 까닭은 아닙니다.
지난 어느 때 행사를 같이 치러내던 사람들은 잘 몰랐던
어느 두 사람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처음 계자를 왔고,
다른 이는 초등학교 때 계자를 오기 시작해 새끼일꾼으로도 매해 다녀가고
대학을 간 이후에도 품앗이일꾼으로 손을 보태고 있었지요.
말하자면 후자는 일종의 물꼬 사람이었습니다.
둘 다 모가 많이 났거나 강해서 그랬을 지도 모르지요.
전자는 물꼬에 대한 애정이 깊어
단정하고 곱고 성실한 새로운 친구의 등장에
괜스레 부루퉁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어찌나 강팍하게 마음을 쓰던지요.
원래 성품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물꼬인으로 성장했다고들 하는 그이인데
그가 더 따뜻하고 너그럽고 선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도 훈련을 통해 보다 나아지지 않겠는지요.
새끼일꾼계자가 그런 성장의 한 기회가 되길 바라지요.
‘영광의 얼굴-새끼일꾼’ 그 명성대로 말입니다.
또 하나의 까닭은 새끼일꾼 하나가 빚었던 작은 물의에 있었습니다.
그리 큰일도 아니고 귀여운 일로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문제가 된 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계자 가운데 새끼일꾼들이 돌려보내진 사건이었지요.
아이들을 준비하고 맞자, 그런 생각입니다.
좀 번거롭기는 한데,
물꼬는 사람을 키우고 싶은 거니까,
그런 과정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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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달날. 추움. <아들 덕에 호강하네!>

(생략)
먼저 하는 방법은, 재료는 배추(어제 예현이네가 준 배추가 2포기 있었다.), 약 1/3~4/1포기, 부침가루나 튀김가루, 없으면 밀가루 약 2~3컵, 물 2~3컵,(물과 밀가루는 4대 1 정도), 밀가루에 한해서 소금 조금이다.
요리 방법은 먼저 배추를 씻고, 자르고, 부침가루를 접시에 담고 물과 섞는다. 그 다음 후라이팬을 달구고, 기름을 붓는다. 그 후 밀가루에 담군 배춧잎을 후라이팬에 붙여서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가게 배열한다. 뒤집기는 3번만 한다. 그리고 후라이팬에 배춧잎을 넣을 때 꼭 잘 밀가루를 털어내서(?) 넣어야 한다.
나는 점심때는 엄마랑 같이 하고 저녁때는 혼자서 배추전을 만들었다. 저녁 때 두 개의 전을 부쳤는데, 하나는 밀가루가 많았고, 하나는 기름이 너무 많아서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맛은 있었다.
나는 전을 먹고 엄마가 “아들 덕에 호강하네!”라고 해준 말이 너무 좋았다.

(열두 살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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