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1.나무날. 새벽 펑펑 내린 눈

조회 수 1013 추천 수 0 2010.01.04 19:24:00

2009.12.31.나무날. 새벽 펑펑 내린 눈


그믐입니다.
저녁, 약속이라도 것처럼 줄줄이 사람들이 문자를 넣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벗이기도 하고 학부모이기도 하고
오래전 물꼬를 통해 만난 인연들이기도 하고
제자들이기도 하고 이곳이 부모고 고향인 이들의 연락이기도 하였지요.
벗이 보내준 한약도 닿았습니다.
그들로 고마웠고
그들로 살았고
그리고 그들을 통해 또 살아갈 테지요.
고맙습니다.

어제 내린 눈으로 길이 얼까 하여
엊저녁 달빛 아래서 길을 쓸었지요,
늦은 밤 달골에 돌아갔으나.
그런데 새벽, 다시 눈 펑펑 내렸습니다.
아침 밝을 때까지 내렸답니다.
그러면?
네, 치우면 되지요.
간단합니다, 눈 내렸으니 치우는 겁니다.
괜히, 쓸었다거나 또 쓸어야 한다거나,
그거 다 부질없는 말이지요.

계자를 앞두고 아이들 집에 전화를 넣습니다.
사흘쯤 전이라면 해야 할 일인데,
지난 두 해는 하루 전에 겨우 전화를 돌리고는 하였더랍니다.
절반쯤은 온 아이들이니
그런 댁들은 새해 안부 인사가 되는 셈이었지요.
오래 아이들의 자람을 보는 일은 늘 느껍습니다.
새 가정엔 올 때 되었다 인사를 넣는 거지요.
목소리가 뭐라고
낯선 곳이었다가 안도하는 계기가 된다고들 하신답니다.
서로 얼굴도 안본 사람들이 아이를 맡고 아이를 보내고,
얼마나 귀한 연인지요.

책 한 권 가볍게 넘기고 있었는데
마음 머물던 다음 대목이 있었습니다.

서양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주 많은 것을 가지고도 자기가 뭘 가졌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부모님은 아마도 자신이 가진 것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도 부모님은 밝고 행복했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서로 웃는 얼굴로 얘기했다. 내가 보기에 서양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만 온통 정신을 쏟는 것 같다. 그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뭔가를 찾고 있다. 어떤 사람은 집을 안내하면서 기도와 명상을 위해 촛불을 켜둔 방을 보여주었다. 촛불이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소말리아에서는 담요 한 장에 모두 함께 자기 때문에 서로 꼭 끌어안아야 했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함께한다는 것이 즐거울 뿐, 함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각자 알라 신께 감사드린다. 소말리아 사람들에게는 기도를 위한 장소가 따로 없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때조차 기도를 한다. “알라 신께서 함께 하시기를.”
뉴욕에서는 모두가 이렇게 인사한다.
“헬로”
그 말이 무슨 뜻일까? 헬로, 라니.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닌 말이 아니다. 그냥 하는 말일 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잘 지내.”
하지만 그것도 하는 말일 뿐이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다시 만납시다.”
신께서 허락하셔서 가족과 함께 보낸 첫날은 즐거웠다.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 <사막의 새벽;Desert Dawn>(Waris Dirie)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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