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계자 닷샛날, 2010. 1.14.나무날. 이른 아침 잠깐 눈 다녀가고, 아주 가끔 해가 가리기도


김밥싸기도 참으로 재미있었다,
이렇게 많은 김밥을 싸본 적이 없었다,
휘령샘의 말만은 아니었지요.
이른 아침부터 샘들이 아이들과 겨울산에 들 채비를 합니다.

닷샛날의 이야기는 꼭 이렇게 시작합니다,
골이 깊고 그만큼 서려있는 이야기 또한 많은 이곳,
그 이야기를 따라
여름이면 백두대간이 지나는 삼도봉에서 삐져나온 민주지산을 오르고
겨울이면 이야기에 담긴 잊혀진 장소를 찾아
겨울 눈 산을 헤치며 모험을 떠난답니다, 라고.
나흘 동안 몸과 마음을 잘 준비시켜
닷샛날이면 어김없이 길을 나서지요.
앞서의 계자는
늑대발자국을 좇아 산으로 들려던 걸음 방향을 틀어
사십 리 눈길을 걸었더랬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길이 되려나요.

이번 겨울 우리들이 좇아가는 곳에 서린 이야기-
전쟁을 피해서, 무리한 세금을 피해서, 지방관의 횡포를 피해서
사람들은 옛적부터 산으로 들고
불을 질러 태운 자리에 밭을 일구고 살아갔습니다.
화전민이지요.
이 산골에도 그런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살았는데,
꼭 이처럼 눈이 많았던 어느 해 겨울
산에서 짐승들도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들고
사람들 역시 먹을 것을 찾아 먼 곳까지 나서야할 판이었습니다.
약하고 아프고 어린 사람들을 마을에서 아무리 잘 돌본다 해도
산골 가난한 마을 살림은 어느새 바닥이 나
아픈 홀어머니랑 사는 열두 살 홍복이네를 거두어줄 집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너무 많이 내린 눈에 산을 나와 먹을 걸 찾아 떠나는 짐승들 발자국을 좇아
홍복이도 먼 길을 떠나게 되지요.
오십 리는 족히 되는 길을 물길을 따라
굽이굽이 넘어 평지 마을에 이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얻어 돌아오는 길, 뜻밖의 것을 발견하지요.
자기 마을 가장 부잣집 아픈 딸에게 좋다는,
어느 스님이 지나다 가르쳐주었다는 처방약이 그것입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감나무의 감이
고스란히 얼어붙은 채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을 따 멕이면
씻은 듯이 병이 낫는다 했더랬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채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하던 감을 따다 주었더니
부자가 큰돈을 감사하다 내놓았고
홍복이는 오랫동안 소망 하던 일을 드디어 이루게 됩니다.
무엇이었던 걸까요?
계곡을 따라 있던 그 길을 타고 구구절절 오간 홍복이의 길은
새해 소망이 이루어진 길이라 하여
사람들이 더러더러 간절한 바램을 품고 걸었다 합니다.
사람들이 가고 또 가면 길이 되지요.
그리하여 지금 같은 넓은 길이 생겼다나요.
많은 알곡을 거두듯 그리 구해진다는 이 길은
먼 훗날까지 ‘다람길’이라 불렸고,
지금 면소재지에 이르는 길이 바로 그 길이 아닐까 짐작한다지요.
그런데, 다람길에 나선
열두 살 홍복이가 살았음직한 화전민마을은 어디께였을까요?
그는 집을 떠나 대해리를 거쳐 다람길로 갔을 테지요.
지난 계자는 다람길을 따라 걸었고
이번 계자는 홍복이의 마을을 찾아 산길을 걷습니다.

단도리가 요란도 합니다.
물꼬에 있는 모든 신발 모든 옷들이 죄 뒤집어지고
행여 눈 속에 젖어 얼어버리지는 않을까
아이들을 꽁꽁 여몄지요.
그래도 손이 미처 닿지 않는 매무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샘들의 등짐에서 양말이 나오고 장갑이 나오고
모자가 나오고 내복이 나올 테지요.
지난 계자 간절한 바램을 안고 걸었던 사십 리 눈보라길을 따라
오늘 우리는 홍복이가 떠난 마을 어디께를 이어 걸으려합니다.
역시 바램을 안고 가지요.
새해 소망이어도 좋고 삶의 모든 여정에 놓고 싶은 목표여도 좋을 겝니다.

대문을 나섭니다.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인 마을 뒷산을 오르기 시작하지요.
짐승 발자국들,
토끼도 있고 삵괭이도 있고 고라니도 있고 멧돼지도 있습니다.
거기 하나쯤은 늑대발자국이었을라나요.
재창이는 멧돼지 잡는다고 눈뭉치 세 개를 들었습니다.
“뒤에서 올라가는 아이들 모습은 또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샘들이 그랬지요.
“예지샘 아닌 줄 알았어. 쌤도 산은 힘든가 봐. 평소 같지 않아.”
지치지도 않고 종알대는 녀석들이랍니다.
그래요, 산은
우리 아이들이 자연에 산에 더 가까운 존재들임을 일깨워줄 것이고,
그들이 더 사뿐히 이 길을 갈 겝니다.

능선길에서 일단 달콤한 파이 하나씩 나눠 먹고
산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환기와
그래서 산에 손님으로 든 이들의 예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길을 걷지요.
그러다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고
몇 발자국 오르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거기 나무 한 그루가 거기 그루터기 하나가 거기 솟은 돌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는 길일 것입니다,
잘 몰랐던 그들의 존재를.
구르는 돌 하나도 버릴 것 없고,
그렇게 시작하는 자유학교 노래를 누구랄 것 없이 되새겼지요.
미끄러진 유환이, 그예 울음을 터뜨리고...
먼저 오른 아이들이 늘어서서 뒤에 오는 아이들을 끌어주고
아래선 샘들이 받쳐줍니다.
이런 진한 연대를 우리가 어디서 가져봤던가요.
먼저 이른 이들은 한바탕 노래로 응원도 하였지요.
‘신아외기소리’는 아예 이번 계자의 주제곡이 되고 있답니다,
아랫배 힘 꽉꽉 주어야 하는.

그 즈음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바램을 놓습니다.
“그래, 그래, 네 소원도 이루어질 거다.”
“그래요, 그래요, 샘도 소원 이루겠네.”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쉼자리마다 그렇게 우리들의 소망을 확인하고
거기 간절함을 실을 것입니다.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 서로를 독려하고 긴 행렬이 깔끄막을 오릅니다.
“이 고비가 최대다, 짧긴 하나.”
눈은 쌓였고, 길은 가파르고, 발은 미끄럽고...
아이들이랑 산행을 처음한다는 주현샘,
“애들이 끌어주고, 이 환경 때문인지, 아이들이 순수해서인지...” 말에
끌어주고 밀어주는 아이들이 감동이었다 원균샘이 그랬고
먼저 올라간 애들이 잡고 끌고
큰 애들이 올려주고 시킨 일도 아닌데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는 풍경에
초록샘은 그만 뭉클했다 그랬지요.
누군가를 돕는 건 느꺼운 일이다마다요.
아이들은 너나없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적부터 아이들은
‘착하게 살지마.’ 라고 말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어느 때부터 착하게 살아라는 말을 놓아버렸을까요.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널다른 곳에 이르렀지요.
죽은 자들은 죽어서도 산자들의 쉼터로 공덕을 쌓습니다.
주현샘은 유환이가 이 길이 끝날 때까지 울지 않기를 소망했습니다.
소원, 이루었지요.
유환이는 더 울지 않았습니다.
유현이의 소망도 그랬네요, 오빠가 연약해지지 않는 것.
그것도 이룬 셈이네요, 유환이는 연약하지 않았으니.
“눈이 더 안 왔으면 좋겠어요.”
정말 눈은 멎었고 날은 푹해졌습니다.
진주형님의 소원이었지요.
“모두가 무사히 산행을 마쳤으면 좋겠어요.”
현준이었습니다. 그의 소원도 성취!
남친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초록샘과
여친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희중샘도
이 산에서 소원 이루었답니다.
“10달러, 만원이 있으면 좋겠어요.”
바로 그때 우리들 발 앞에
눈에 젖고 가랑잎 묻은 만 원 짜리 하나 나왔습니다.
눈앞에서 바로 이루어져버린 최고의 소망, 재우의 것이었답니다.
그런 날마다의 기적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물꼬 상설학교가 다시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현진이의 고마운 소망이었네요.
“미안합니다. 그럴 계획이 없으니 소원 수정바랍니다.”
그렇게 가능한 소원들로 수정 보완도 하며
우리들은 바램을 안고 또 산길을 걸었습니다.

다시 오름길.
어느새 여유도 생기지요.
저 산도 넘었는데, 저 구비도 돌았는데 더 못 오를 까닭이 없지요.
소원을 말하지 않았던 아이들에게도 계속 묻습니다.
“또 누구 소원?”
“저요!”
“응.”
“내가 평화롭길,...”
“저요, 저요. 내가 그러하듯 남도 평화롭기를...”
아, 그래요, 우리가 아침 저녁 되내이는 게송을
아이들이 읊고도 있었답니다.

점심.
볕바른 곳이어도 아직 눈은 두텁습니다.
눈을 긁어내고 나무들을 하나씩 기대고
아니면 기댄 다른 사람들을 기대고 철퍼덕 앉았지요.
김밥은 눌렸고 사과는 차갑습니다.
눌린 김밥, 덕지덕지 어찌나 서로 친해져있던지요.
“이걸 어떻게 먹어요?”
꼭 그런 아이 하나쯤은 있지요.
하지만 어느새 그도 맛나게
그것도 다섯 개 여섯 개(김밥을 네 등분을 자른)씩 먹고 있었지요.

“자, 이제 단숨에 내려갑니다.”
이쯤이면 되겠습니다.
다른 산오름에 견주면 절반도 안 되는 강도이지만
며칠 전 내린 눈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산에서의 움직임이
만만치는 않았지요.
그런데, 예현이한테는 벗어주겠다던 장갑을
주미에게 장갑을 벗어주지 못했습니다,
예현이 것이 아직 덜 젖어있어 계속 끼기로 했는데도.
순전히 더 큰 아이였기 때문이었다지요.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하고
내가 따숴야 이 아이들을 건사하고 나아갈 수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눈에 묻힌 길은 어떤 길이 될지 모르니.
하지만 다 벗어주고도 견디어야했지 않았을지요.
미안합니다.

내려오는 길.
여느 때 같으면 마치 가을이기라도 한 양
낙엽미끄럼틀들이 있을 곳에 다, 다 눈입니다.
그냥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겨울은 덤불이 우거져있지 않으니 어렵지가 않지요.
길이 아니어도 길입니다.
어디쯤 경사진 무덤가.
먼저 닿은 아이들은 어느새 눈썰매를 탑니다.
하나가 타고 둘이 타니
틀이 다져지지요.
그러면 먼저 내려간 아이들이 가랑이를 쫙 벌리고 섭니다.
내려가는 아이들이 그 아래로 씽 미끄러지고...
아, 정토입니다, 천국입니다.
아까까지 구름에 더러 가리기도 하던 해,
서산으로 기울던 볕이 어느새 한껏 닿아
몸도 좀 풀렸지요.
또 노래를 부르고,
아직 뒤에 오고 있는 아이들을 격려합니다.
“민아 왔어?”
“여기요.”
휘령샘 손을 의지하며 어느새 와 있었지요.

“아,...”
금새 산 들머리에 닿은 우리들은
갑자기 얼어붙어 호수에서 놀란 청둥오리들이 날아가다
그만 떨어뜨려놓은 대해못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지요.
그리고 놀았겠지요, 실컷.
누구는 스케이트선수 흉내도 냈을 테고
누구는 가장자리에서 썰매도 탓을 것이며
누구는 드러누워 팔을 허우적대며 천사 날개를 그렸을 테고,
마냥 달기기도 했을 겝니다.
뒹굴고 또 뒹굴이었지요.

돌아와 ‘한껏맘껏’.
너무 길었을라나요,
곳곳에서 놀이가 벌어지고
몇 차례의 다툼이 일기도 하고...
그런데 책방을 지키던 선영샘이 그랬지요.
“여기 저기 시끄러운 일, 그 상황에서 빠져서 그런지 가벼운 일,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고
이런 게 평화가 아닐까... 물꼬 학교가 있고 아이들이 있고... 이런 게 선생이 느끼는 보람 아닐까... 서울에서 잃었던 웃음을 되찾는 자리가 되고...”

산에서 내려왔으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나 짚었겠지요.
마지막 한데모임은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한 마디씩 꺼냈습니다.
이어진 대동놀이.
걸판지게 놀았지요.
오랜만에 오재미도 던지고
닭들이 되어 고래방을 휩쓸고 강강술래도 하고...

모두 마지막 밤을 위해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장작불 타오르고 있었지요.
흐린 하늘 숨은 별 대신
이어지는 노래로 빛이 났더랍니다.
아, 유환이 뭔가 찾고 있는데
서로 뛰어다니느라 아무도 못 도와주고 있을 적
순진이가 나서고 있었습니다,
정말 예비 새끼일꾼다웠지요.
모두 지난 닷새를 돌아도 보았습니다.
5박 6일이 1박 2일 같다고도 하고
이제 좀 친해졌는데 헤어진다 안타깝다 하고
또 오겠다는 다짐도 하고
현수는 하다형이랑 이제 친해졌는데 아쉽다 하였습니다.
그러다 불에서 나온 고구마 혹은 감자를 들고
서로에게 달겨들었지요.
산사람 같이, 소도둑 같이, 광산에서 곡괭이질 하다 갓 돌아온 양
다들 온갖 모양의 숯칠을 하고 인디언잔치를 벌였더랍니다.

늦게야 잠이 든 아이들방을 나와
샘들은 불가에서 마지막 하루재기를 합니다.
노래와 박수가 많았던 계자라고들 했지요.
내 웃음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
이렇게 웃어주기만 해도 아이들이 좋아하는구나,
항상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웃어줘야겠다,
예지샘은 그리 교단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태우형님은 어느 때보다 ‘배려하는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지요.
“그들과 같게, 다르게!”
아이들과 놀 때는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으로 놀지만
한편으론 항상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는 것 깨달았다나요.
산오름이 너무 재밌었고, 정말 산책 갔다 온 기분이라는 진주형님,
그가 왔던 첫 해는 무지 힘겨워하던 산행이더니
이력이 붙었나 봅니다.
덧붙여 새해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했지요.
“아버지가 등산가자 하면 올라갔다 내려올 걸 왜 가냐 그랬는데...”
난생 처음으로 등산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초록샘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도와주는데 그걸 보면서 역시 물꼬에선 남을 도와주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서 참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이끌며 올라가고 발이 꽁꽁 언 아이들의 발을 녹여주고 하면서 속상한 마음과 함께 그 아이들의 부모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아빠와 가끔 산을 오르면 저를 챙겨주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아빠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하고 조금 짐작이 가더라구요.”
아람형님이었지요.
‘...몸으로 부대끼며 보낸 시간들이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주일간 아이들과 지내면서 초반에는 문제 해결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는 좀 더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듯합니다.’
주현샘은 하루정리 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만 성장이었을까요,
우리 어른들도 그 아이들로 그러하였던 게지요.
그래서 어른의 학교이기도 한 것입니다.
고마울 일이지요.
‘뭔가 모르게 벅차올라요.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매일 고생하시는 삼촌, 모든 샘들, 그리고 물 음식 맑은 공기, 하늘에 떠있는 별, 별이 이렇게 밝은 줄은 몰랐었습니다.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원균샘의 하루정리 글 가운데서)
‘고백할 게 있습니다. 사실, 아이들을 챙기는 일보다 네가 아이가 되어 신나게 놀았던 거 같아... 느렸지만 천천히 다가와 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선영샘의 같은 글 가운데서)

그리고 교사가 되려는 이들에게
물꼬가 전하는 말도 있었지요.
“교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이가 있으면
크게 어긋지지 않고 세상을 살 것이다,
교사가 그럴 수 있지 않을지요.”
교사는, 또는 어른은 자기를 극복하는 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싶단 말도 했지요.
연민에 대한 얘기도 있었네요.
“누구든 이 세상을 건너가느라 애씁니다, 우리도, 아이들도.”
그리하여, 오직 사랑하자, 깊은 믿음으로,
꼭꼭 씹어뱉은 마지막 말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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