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15.달날. 맑음

조회 수 993 추천 수 0 2010.02.27 00:01:00

2010. 2.15.달날. 맑음


꽁꽁 언 저녁길입니다.
눈도 내린 뒤라 고향 길들이 어렵지나 않으려나요.
발자국마다 미끌미끌 몸의 균형을 무너뜨린답니다.

생이 통 재미가 없다는 벗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설 잘 쇠란 인사 끝에 덧붙인.
우울증일까요?
뭐 생이 늘 재밌기만 하겠습니까만
너무 오래 가라앉아있으면 영혼이 갉히지요.
“잘 될 거야.”
자신한테도 그리 말하라 일러줍니다.
긍정적인 기운이 긍정적인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테지요.
살다보면 아주 가끔 무기력해지는 날들이 있지요.
그런데, 별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놓인 길은 딱 둘이라니까요, 죽느냐, 사느냐.
죽지 않고 살 거라면 벌떡 일어나 움직여야지요.
그러다보면 또 힘이 솟구치게 되는 거 아닐지요.

새벽 일찍 잠이 깼더랬습니다.
겨울잠이 끝날 무렵이 됐나 봅니다.
병에 가깝게 추위를 많이 타서
계자를 끝낸 한동안은 한껏 늦은 아침을 맞았더랬지요.
식구들한테도 ‘여름에 더 일할게’ 그리 양해를 구해놓고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움직이다 또 이불 속에서 뒹굴기도 여러 날이었습니다.
식구가 많으면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몇 되지 않으니 그런 호사를 누렸습니다.
겨울 계자를 끝내놓고 한 달 가까이 그리 보냈는데,
이제 봄이 가까운가 보지요.
몸이 저 먼저 알고 한 사흘 일찍 일어나고 있답니다.

군대 가는 대학생 대건이와
곧 재수를 시작하는 수미가 찾아왔습니다.
올 겨울 계자에서 참석해보려 했던 이들이지요.
어리나 나이 먹으나 생에 무거운 짐들이 얹힐 때가 있지요.
지난 한 달 여러 차례 메일이 오갔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요,
그저 이곳에서 하는 일이란 듣고 또 듣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면 스스로 길을 찾지요.
그게 방법이란 걸 자신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잠시 어른한테 벗에게 기대보는 게지요.

가마솥방 난로 연탄불이 꺼졌습니다.
교무실난로에서 옮겨오면 되겠다 싶지만,
양 쪽을 같은 시간대에 가는 거라 같이 꺼졌네요.
그런데, 번개탄 하나면 금새 일어나는 불일 것인데,
소사아저씨 없는 줄 연탄도 아는지
답체 피워 올려지지가 않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니 해봤던 일도 아닌데
아, 왜, 연탄에 불이 붙지 않는 걸까요?
어미도 아비도 아들도 찾아온 이들도,
너도 나도 다시 피워보고 하였지만
번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재를 다 긁어내고 연통도 살피고 불구멍도 분명 활짝 열었는데
무슨 까닭일까요?
그나마 날이 그리 차지 않아 다행이었지요.
다시 피워놓고 달골을 올랐는데,
붙어 주어얄 것을...

두어 해 전 설 즈음이던가,
마침 어머니댁 들렀던 길에 재봉질을 좀 했더랬지요.
버려놓은 청바지 하나 있어 책가방도 만들고
아이에게도 손가방 하나 만들어주었는데,
정작 제가 더 잘 들고 다녔더랬습니다.
늘 손에 들고 다녔던 말 그대로 손가방이었던 지라
아주 튼튼하고 질겼던 감은 어느새 흐물거리고
작년엔 아래 양 귀퉁이가 뚫려 펜이 삐져나오길래 천을 덧대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짬이 좀 나는 명절이잖아요.
드디어 옷방에서 다른 바지를 찾아내 재봉틀 앞에 섰습니다.
사람들 와서 얘기 나눌 때 손 움직이기도 좋지요.
이번엔 버려진 빨간 원피스도 하나 챙겨 잘라 붙이니
제법 멋스럽기까지 하였답니다,
아주 정장 아니라면 어느 옷에나 들기 좋겠는.

어제 삶아 널어둔 앞치마들을 걷어옵니다.
오래된 것이라 빠지지 않는 물도 있지만
여전히 멀쩡합니다.
다림질을 해주지요.
낡아 사라지지 않는 얼룩들 달라지지 않았지만
번듯해졌답니다.
삶도 그리 다림질 가끔 해주어야할 테지요.
설이 그런 날 아닌가 싶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3734 2012.10. 7.해날. 맑음 옥영경 2012-10-24 997
3733 2012. 7. 5.나무날. 비 내리는 고속도로 옥영경 2012-07-19 997
3732 2012. 6.22.쇠날. 맑음 옥영경 2012-07-02 997
3731 2010.11. 4.나무날. 맑음 / 가을 단식 나흘째 옥영경 2010-11-16 997
3730 2010. 8.23.달날. 비 온다더니 소나기 아주 잠깐 옥영경 2010-09-07 997
3729 2010. 1. 1.쇠날. 밤사이 또 눈 옥영경 2010-01-04 997
3728 2009. 9.12.흙날. 맑음 옥영경 2009-09-18 997
3727 163 계자 나흗날, 2017. 1.11.물날. 맑음 / 네가 그러하니 나도 그러하다 옥영경 2017-01-13 996
3726 2013. 5. 1.물날. 먹구름 밀고 당기고 옥영경 2013-05-08 996
3725 2012. 8.31.쇠날. 비 옥영경 2012-09-11 996
3724 2010. 1.16.흙날. 맑음 옥영경 2010-02-02 996
3723 예비 실타래학교 이튿날, 2013. 1.15.불날. 맑음 옥영경 2013-02-01 995
3722 2010. 9.21.불날. 늦더위 2010-10-05 995
3721 2010. 6.30.물날. 빗방울 잠깐 옥영경 2010-07-14 995
3720 2012.12.18.불날. 맑음 옥영경 2012-12-28 994
3719 2010. 3.22.달날. 우박 떨어지는 저녁 옥영경 2010-04-06 994
» 2010. 2.15.달날. 맑음 옥영경 2010-02-27 993
3717 2012. 5.21.달날. 맑음 옥영경 2012-06-02 993
3716 2010. 8.20.쇠날. 소나기 옥영경 2010-08-30 993
3715 2010. 6. 6.해날. 무더위 옥영경 2010-06-12 99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