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28.해날. 보름달 오르다

조회 수 1025 추천 수 0 2010.03.17 01:38:00

2010. 2.28.해날. 보름달 오르다


날이 환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월대보름달을 볼 수 있겠습니다.

아침, 부산의 청년한의사모임 식구들이 들어왔습니다.
민주지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길 걸음 한다 했는데,
차 한 잔 마시고 가라 불러들였지요.
논두렁 문저온님의 선배 혹은 후배들이라 하기
국밥 한 그릇 기꺼이 낸다 했더랬습니다.
진혁님 성수님 만수님 성효님 석구님 대풍님,
귀밝이술에 부름 깨고 더위 사서 산으로들 가셨지요,
약식 한 덩이를 싸서.

볏가릿대를 세웠습니다.
대보름 새벽이면 아이들이
전날 세워둔 볏가릿대를 돌며 풍년노래를 불렀다지요.
해 너무 짱짱했으면
새벽이 너무 오래전이어 민망할 뻔하였습니다.
늦도록 놀았던 간밤이었던지라
늦은 아침을 시작하자 했더랬지요.
숨꼬방과 농기계주차장 앞으로
창신네서 얻어온 아주 아주 키가 큰 잎 달린 대나무 장대를 세우고
꼭대기에 매어둔 굵은 새끼를 세 방향으로 주욱 아래도 당겨
세 꼭짓점에 놓인 돌에다 묶었습니다.
“달두 달두 밝다.”
“달두 달두 밝다.”
선소리꾼이 매기면
둘러서서 한 방향으로 천천히 돌던 이들이 소리를 받습니다.
“달 달도 밝다.”
“달 달도 밝다.”
남회장저고리 어화둥, 백항라저고리 어화둥...
그러다 달은 해가 되지요.
해도 해도 높다, 해 해도 높다...

이제 달집을 쌓을까나요.
마을에서 몇 해 전부터 손을 놓은 일입니다.
그 마지막 해, 눈이 비 오듯 했던 그 해
계자에 와 있던 아이들이 고깔 쓰고 악기 울러 매고
한바탕 잘 놀았더랬습니다.
올해 이렇게 놀아본 뒤
물꼬에 식구가 좀 더 들면 아예 마을 사람들 다 불러 놀아야겠다 하지요.
큰 가지를 중심을 향해 세우고 그 곁을 김치오가리처럼
나뭇가지들을 쟁여나갔습니다.
그 사이 이엉처럼 엮은 짚을
달집 겉에다 에둘러 쌌지요.
한편 연을 날렸습니다.
하창환님이 어릴 적 한 놂 하던 실력을 발휘했지요.
우와, 높이도 올라갑디다,
우리들의 앞날마냥.
그 연 툭 끊어 달집 꼭대기에 매달았습니다.
달집 곁에는
구멍 뚫고 철사손잡이를 맨 깡통도 준비해두었습니다.
달집이 타고 나면 숯을 담아 돌려댈 테지요.

사람들이 산을 내려오고
허기를 채우고
강강술래 소리를 미리 익히고
그리고 창호지에 소원문을 썼습니다.
저마다 바람 담아 달집을 마무리하여 꽁꽁 둘러싼 새끼줄에
그 소원 다 매달았지요.
마침 옛적 서울서 가르쳤던 아이들이 큰대문을 들어섰습니다.
초등학교 4, 5, 6학년을 같이 보내고
중고 때는 해마다 한 차례 2월이면 모여 한 해를 다시 돌아보던,
스물여덟에 이른 그 아이들 이제 대학 졸업하고 다들 자리 잡아
듬직하게 나타났지요.
대웅이, 민수, 영수, 승윤, 송희.
의사가 된 세온이는 새 병원으로 옮겨 떠안은 게 많아
오지 못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또 어찌 변했을라나요.
고기며 곡주며 온갖 먹을거리 잔뜩 내려놨답니다,
혹여 폐가 되진 않으려나 벌써 조심들 하면서.
“너들도 어여 소원문 써서 나오니라.”

달이 오르려합니다.
악을 치기 시작했지요.
달집에 불도 댕겼습니다.
(뒤에야 인술이 아저씨한테 물었더랬지요.
속을 꽉꽉 채워야 한다데요.)
“옷 벗고 누웠다가 소리 듣고 왔어.”
뒷마을 호호할머니도 건너오셨더랍니다.
달빛이 붉으면 가물고, 희면 장마가 있는다 하였으니
큰 장마라도 있으려 허였더랬지요.
그 달 북쪽으로 치우치면 두메에 풍년, 남쪽으로 치우치면 바닷가에 풍년,
북쪽으로 치우쳤으니 예 풍년 들겄네요.
달의 사방이 두꺼우면 풍년, 얇으면 흉년,
역시 풍년 들겄습니다.
하기야 언제 달의 사방이 얇았던가요,
언제 남으로 치우치던가요, 어디.
대보름은 늘 풍년을 예고하지 않았던지요, 하하.
목이 숴라 부르는 노래처럼
악을 치고 또 쳤더랬습니다.
땀에 흠뻑 젖었지요.

“오늘 개시다!”
아레께 처음 들어온 그릴에
사람들이 실어온 고기를 구웠습니다.
달은 사람들이 서운치 않을 만치 밝았다가
흐물흐물 하늘 속으로 기어들고 있었지요.
대신 숯불 바알갛게 밤을 밝혔더랍니다.
그리고 밤새 이야기, 이야기.
우리들의 지나온 시간들이 거기 흘러다녔습니다.
우리들은 건강했지요.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추억을 넘어
현재성을 놓고도 치열하고 있었답니다.
좋습니다, 참말 좋습니다.
새벽 세 시도 훌쩍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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