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달날. 비, 그리고 안개

조회 수 1018 추천 수 0 2010.03.18 00:42:00

2010. 3. 1.달날. 비, 그리고 안개


느지막한 아침,
정월대보름잔치를 끝내고 달골에서 남은 이들이
모여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산골마을에 비 조용히 내리고 있었지요.
이렇게 열흘이고 스무날이고고 있겠는
서울서 온 제자들을 ‘물꼬국밥’을 멕여 떠나보내고,
수민, 지윤, 하다, 아이 셋을 데리고 문저온님이랑 선운사로 향했습니다.
언제 적부터 같이 걸음하려던 곳이지요.
고인돌박물관도 가자 하였으나
마침 휴일이고 말았더이다.

아, 선운사...
고창의 너른 들과 칠산바다의 조기,
그리고 곰소의 소금이 먹여 살린 선운사,
이제는 머리가 허얘진 선배가 까만머리 적
내장산을 내려오다 같이 들렀던 곳입니다.
이 절집 기둥들은 바닷물에 들었다 나온 것들이라 들었더랬지요.
도솔암 칠송대 양옆의 소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라나요,
추사의 백파선사 비문도 무사히 있을는지요.
훗날 어느 답사기에서 시인과 미술사학자가 나눈 얘기를 들었습니다.
추사체의 울림을 남김없이 입체화시켰다고
석공의 손끝을 칭송하자 시인 왈,
그래도 추사가 석공보다 한 수 위라 했습니다,
석공은 입면에 리듬을 새겼지만 추사는 그것을 평면에 했기에.
그 유명한 백파와 추사의 선논쟁을 듣고
다시 꼭 거기 가고팠던 오랜 세월이었네요.

들머리가 너무 바뀌어 예 왔던 게 맞던가 싶습디다.
그때 묵었던 동백여관도 찾을 수 없고
풍천장어와 복분자술 파는 집만 즐비하데요.
젖은 날이라 벌써 어둑해지는 늦은 오후였지요.
차를 놓고 계곡을 따라 걸어갑니다.
선운사 뒤란 동백숲은
그 그늘로 걸어 들어가면
그만 이 세상으로 나오는 길을 잃을 것만 같았더랬습니다.
여전할지요...

절집 마당에 들어서니
종고루에서 마침 저녁예불을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 세 분이 법고를 두드린 뒤 범종을 쳤지요.
저녁에는 아침의 스물여덟 차례와는 달리
도리천 33천에 울려 퍼지라 서른세 차례 종을 칩니다.
(뒤바뀌었나요... 갸우뚱갸우뚱...)
이어 목어를 치고 운판을 쳤지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 먼 길이.

마당의 만세루도 보는 둥 마는 둥
대웅전 왼편에 있던 집 하나 찾습니다.
없습니다.
기억엔 거기 있었는데,
하지만 기억이란 것도 머리 안에서 움직이지요.
다른 곳에 있었나 두리번거립니다.
예불을 위해 바삐 걸어가시는 스님 세우고 여쭈니
저어기 요사채로 쓰이고 있는 커다란 집 자리가 거기라 합니다.
헐린 게지요.
그 마루에서 받았던 가을 햇살을 이제 더는 받을 수 없는 게지요.

대웅전으로 드는 스님들을 따라 들어
삼배를 하고 나왔습니다.
“저기!”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봅니다.
절집에 오면 아이는 꼭 삼신각에 가지요.
아이 어릴 적 어느 노스님이 아이더러
절에 가면 잊지 말고 삼신각을 찾아 절하라 했지요,
네게 드는 액을 막을 거라며.
그 말이 옳든 그르든 절을 하는 동안 아이는
명상에 다름 아니게 들 것입니다.

스님들이 읊는 반야심경(그것도 긴가민가 하네요)을 들으며
드디어 뒤란으로 걸어갔습니다.
동백숲...
숨이 멎었지요.
이 어둠에도 동백꽃이 바알갛게 고개를 뺐습니다.
4월은 돼야 만발할 테지만
벌써 채비들을 하고 있었지요.
그 그늘에 서봅니다.
송이채 부러지는 동백꽃처럼 왈칵 웬 설움 몰려옵디다.

꽃이 / 피는 건 힘들어도 / 지는 건 잠깐이더군 /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
아주 잠깐이더군 //
그대가 처음 /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
잊는 것 또한 그렇게 / 순간이면 좋겠네 //
멀리서 웃는 그대여 /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 지는 건 쉬워도 / 잊는 건 한참이더군 / 영영 한참이더군

;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전문

미당의 시처럼 아직 일러 동백은 피지 안했고
옛적 선운사 들었던 기억만 상기도 남었더랍니다.

선운사 골째기로 / 선운사 동백꽃을 / 보러 갔더니 /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 막걸릿집 여자의 / 육자배기 가락에 /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 서정주의 ‘선운사’ 전문

다시 먼 길을 달려 진주에서 일행들 빠지고
남은 아이랑 김해로 들었지요.
아이는 달포를 예서 보낼 겝니다.
아이가 가고 그 빈자리로 사람 셋 든다는 소식있었지요,
희중샘, 선아샘, 세아샘.
종대샘도 온단 연락이네요,
집 짓는 현장을 옮길 때
뒤란 보일러실 손 좀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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