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빈들모임 닫는 날, 2010. 3.28.해날. 맑음

조회 수 1004 추천 수 0 2010.04.11 11:42:00

3월 빈들모임 닫는 날, 2010. 3.28.해날. 맑음


달 밝기도 합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빈들모임 닫는 날,
아침 수행은 절명상입니다.
한 배 한 배의 간절함을 싣습니다.
명상이고 몸 수련이지요.

숲 속 깊은 곳,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산책길이 있습니다.
봄이 온 길을 좇아 아침을 먹고 올랐지요.
물소리인가 돌아보면 솔숲이 만드는 바람소리이고
누군가 부른다 고개 빼면 새소리입니다.
아이들은 계곡에 들어 돌과 돌들을 건너뛰고
가끔 버들강아지를 들여다보느라 멈춰 섰지요.
어른들도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삶의 언저리들을 돌아보며 걸었습니다.

어제 캔 냉이로 냉이튀김을
그리고 갖가지 채소로 야채튀김을 이른 점심으로 먹고
낮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난 이도 있었지만
거개는 남아서 오후를 함께 보냈습니다.
교실 뒤란 나무보일러실 안에
보일러통을 감싸 쌓아올린 벽체 안으로 자갈을 채우는 일을
남자 어른들이 더 해내고도 있었지요.

먼 길을 와 하룻밤만 지내고 가기 아쉬운 이정애엄마도
아쉬운 발걸음을 놓고 난롯가에 더 앉았습니다.
지난 겨울 계자 밥바라지로 물꼬에 손을 보탠 뒤
더욱 가까운 사람들이 되었지요.
벗이 꼭 학교동급생으로만 만들어지던가요.
‘윤리적소비’를 내세운 유기농생협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제3세계 아동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싸우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긴 하나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그런데 그들이 일해서 버는 몇 푼의 돈이 그 가족들 생계를 잇는 수단인 걸.”
그것에 대한 대책은 없는 거지요.
“딱 거기까지가 흔히 말하는 윤리적소비가 아닌지...”
아, 그렇다면 또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녁밥상을 차리기 전,
이제 기차를 타고 떠날 이들과 수행하러 들어와있던 젊은이들과
공동체식구들만 남았습니다.
그때 두두거리며 복도를 달리는 발소리와
아이의 외침이 들렸지요.
“보일러실에 불났어요!”
보일러실을 나온 보일러배관이 복도를 건너 교실로 들어가는 곳,
복도 벽 너머 뒤란에 나지막하고 기다랗게 그 분배관을 둘러친 집(?)이 있습니다.
보일러실 문 앞 바로 거기서 불은 날름거리고 있었지요.
바람 거세게 불고 있었고
연기 이미 자욱하였으며
불은 거칠게 숨을 몰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가마솥방에 모여 차를 마시다 좇아나간 어른들,
어쩔 줄 몰라 잠시 우왕대는 사이
아이는 달려가 소화기를 들고 왔습니다.
또 달려가 또 다른 곳의 소화기를 들고 오고...
“이거 어떻게 하던 거더라...”
“엄마, 핀을 뽑아!”
소화기를 흔들고 불을 향해 분사하고 또 다른 소화기로 또 분사하고,
네 대의 소화기가 널부러지고 불이 잦아들었다 싶을 적
그제야 양철지붕을 뜯어내고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를 여진의 불을 찾아 다시 소화기를 분사했지요.
그제야 어른들은 물을 길어오고, 119에 연락을 취하고...
스무 살 넘은 성인들이 발만 동동거릴 때
움직여준 게 아이였습니다.
한 해 한 차례 하는 소방훈련이 그렇게 빛을 발했지요.

나중에 119 사람들이 와 정말 더 번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그제야 우리들 눈에 보일러실에 천장까지 쌓인 종이상자들과
분배관 옆에 쌓인 땔감들이 보였지요.
게다, 바로 그 곁이 나무로 된 복도 아니던가요.
초기진압! 초동수사의 중요성처럼 얼마나 중요한지요.
천만다행이었습니다.
학교 다 태울 뻔했습니다.

네, 아주 아주 긴 하루였더랍니다.
이렇게 날마다의 기적을 또 더한 날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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