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16.해날. 맑음

조회 수 1107 추천 수 0 2010.05.30 17:57:00

2010. 5.16.해날. 맑음


잠결에 아이가 다가와 뭐라고 뭐라고 했는데
깨어서는 그만 잊고 아이를 불렀습니다.
대답 없는 아이의 방문을 열고 개켜진 이불을 보고서야
숲에 들어간 걸 생각해냈지요.
새벽부터 그는 더덕을 캐러 홀로 산에 갔습니다.
더덕주를 담아 아버지한테 보낸답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인데 말입니다.

이른 아침 대파를 좀 심어봅니다.
늘 잘 안 되더라구요.
올해는 어떨는지...
작년에 심고 남은 씨를 좀 놓았습니다.
고추장집 앞집 할머니가 실하게 잘도 키운 걸
씨 좀 나눠달라고도 하였으니
그 씨 잘 갈무리하여 심어도 볼 참이지요.

봄이 오면 달골에 큰 숙제가 있습니다.
지난 한 해 지붕에 얹힌 마른 낙엽들 긁어내는 일이지요.
그것들을 제 때 치워내지 못하고 맞았던 여름,
큰 비에 아주 혼이 난 적 있었더랬습니다.
마침 온 종대샘이랑 창고동 지붕에 올랐습니다.
2층 베란다에 사다리를 놓고 오를 적이면
떨어질 것만 같아 아주 불안하다가
지붕에 안전하게 올라 다리를 걸치고 앉을 때면
그제야 눈으로 들어오는 건너 산이며 마을,
안전과 함께 찾아온 평화의 순간이지요.
그런데 양철지붕에 한낮에 오르니
으윽, 발이 견디기 힘들었겠지요.
얼른 아래의 소사아저씨한테 신발을 올려 달라 부탁하였더랍니다.

달골 들머리 호두나무 가지 하나도 잘라냅니다.
양양의 구들연구소 무운샘이 오셨을 적,
‘저 가지 하나 자르고 저 쪽으로 전짓줄을 옮겨..’
몇 가지 조언을 해주셨더랬지요.
지금 들어와 있는 농사용 전신주를 밭 가쪽으로 옮겨
공간을 유용하게 쓰려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그 터의 흙은
아주 깎아내 이곳저곳 요긴하게 쓰려지요.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다가가는 일들은
언제나 즐거움입니다.

해질녘엔 온 식구들이 효소단지들을 정리했습니다,
지난 겨울을 지낸 것들을 거르기도 하고
이전에 있던 것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몇 가지는 합하기도 하고.
포도 매실 모과 복숭아 오디 앵두 담쟁이 탱자 인삼 고구마순 고춧잎...
“엄마, 언제 이렇게 했어?”
그러게요, 틈마다 조금씩 했던 것들이
이렇게나 갖가지입니다.
저금이 그렇고 공부가 그렇고
날마다 조금씩 해내는 일이 그리 무서운 것이랍니다.
감식초도 걸렀습니다.
“아직도 더 나와!”
아이가 더 야물게 받쳤지요.
좀 더 숙성시켜 식구들 건강식으로 잘 쓰려한답니다.
물론 두루 나누기도 할 것이지요.

어려운 시간 큰 위로가 되었던 선배가
간암으로 투병을 시작한 게 벌써 한 해입니다.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친 어른이지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아이는 간암에 대해 연구 한창입니다.
조만간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을
꾸려서 드릴 생각이랍니다.
고맙습니다. 사람에게 쓰는 마음이.
모자란 게 많아도 잘 채워가며 자라고 있습니다.
무수한 우리들의 아이들이 그럴 테지요.
문제는 늘 절대로 변하지 못하는, 혹은 자라지 못하는 어른들이지요, 아암.

하루 머슴살이 가는 아이를 태워다 주고 돌아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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