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20.나무날. 맑음 / 특수학급 미용실

조회 수 1264 추천 수 0 2010.06.03 16:34:00

2010. 5.20.나무날. 맑음 / 특수학급 미용실


박 모종을 심었습니다.
여름날 시계가 따로 없던 시절,
박꽃 피면 밥을 지으러 갔다 했습니다.
해가 너무 길어 저녁밥 때가 가늠키 어려울 적
날 아직 어둡기 전이어도
저녁답에 꽃잎 열릴 때가 딱 밥 지으러 가얄 때더라,
박을 심고 신기하였더랬지요.
흐린 날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때를 잘 모르겠더니 그 꽃 하얗게 펼치면
그때가 저녁쌀을 앉히려 가기에 꼭 맞는 대여섯 시입디다.

큰 마당 곳곳에 평상 몇 놓여있습니다.
마당에서 놀다가도, 오며가며 손님들이 드나들 때도,
마당에서 일하다가도 잠시 다리쉼이 좋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잡고 있지요.
오늘은 거기 둘레며 풀을 뽑았습니다.
풀 많으면 뱀도 놀다가기 좋아하지 않겠나 싶어
서둘러 뽑아냈지요.

오늘은 통합지원반에 미용도구를 들고 갔습니다.
“쟤 머리 좀 잘라야 할 텐데...”
그러나 아비한테 말해도 소용없다 했습니다.
특수학교는 사정이 어떤지 몰라도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은
아이들이 가정에서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환경이 더욱 아이의 장애를 심화시킨다고 생각할 만치.
“제가 머리 자를 수 있는데...”
그렇게 오후에 자리 잡고 앉았더니
옆반에서며 지나가면서며 몇 교사도 줄을 섰지요.
“나는 전체적으로 다....”
“난 앞머리만 좀...”
그렇게 오늘 우리 학급은 즐거운 미용실이었더랍니다.

그런데 영 아이 머리가 비뚭니??
아이는 자꾸 옴작거리지요,
계단 아래서 조명은 어둡지요,
의자는 낮지요...
하기야 선무당이 연장 탓하는 법이지요.
제대로 된 조건을 만들고 일하라!
그래도 조건이 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고르지 못한 아이의 머리를 보며 오늘 한 결심이었답니다.

정기장학이 있었습니다.
공개수업 셋을 보았지요.
'날씨와 기호'를 다룬 특수학급 수업,
2학년 ‘길이재기’와 5학년 ‘도형의 전개도’ 수업.
교구는 크고 튼튼하게, 자료는 선명하고 명확하게,...
여러 생각이 들었지요.
하는 이는 힘에 겨울 텐데, 보는 이는 말하기가 또 이리 쉽습니다.
어쨌든 개인의 취향일 텐데,
전 아무래도 계산하고 가는 수업에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의 반응까지 기록하는 연극대본 같은 ‘교수-학습안’에는
더욱 길이 들여지지가 않더이다.

장애를 가진 때밀이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하소연을 듣느라 잠시 앉았더랬지요.
“사람 무시하고 발로 툭툭 치고...”
“아니, 제 몸을 그렇게 다 닦아주는데?”
자신의 몸을 그토록 개운하게 해주는 사람을
그리 대하는 이들이 있더란 말이지요.
사람이란 게 그렇습니다!
못 배웠다 싶으면 무시하고 없다 싶으면 군림하려 들고...
사람인 게 부끄러운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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