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6.해날. 무더위

조회 수 993 추천 수 0 2010.06.12 15:01:00

2010. 6. 6.해날. 무더위


보리는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된다는 망종.
한 해 가운데 날이 가장 맑고 좋은 때입니다.
그리고 현충일.
기록에도 옛적 나라를 지킨 이들의 혼을 이즈음 기렸다지요.
그래서 이 날을 현충일로 삼게 되었다던가요.
그러고 보니 한국전쟁이 시작되기도 했던 달이네요.

종일 5월 한 달 밀린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휴일이면 연락 없이 지나다 오는 손님들이 잦습니다.
“천덕에서 어느 교장선생님이랑...”
여러 어른들과 아이들이 들어섰던 모양인데,
바쁜 사정 아는 아이가
약속 없이 온 이들이라고 다음에 걸음하십사 돌려보내주었습니다.
맘 상하지 않게 잘 말씀드렸어야 할 텐데...

그리고 잠깐 들리기로 했던 청주의 박종희님,
여름에 수행공간으로 달골을 쓰는 문제로 왔는데
아장거리는 아이 하나를 포함해 열이나 되는 사람들이 같이 왔습니다.
다행히 류옥하다가 안내를 맡아주었지요.
그 사이 민주지산을 가족끼리 오르고 내려오던 형찬이네도 들어섰습니다.
방학 때마다 아이가 다녀가는 곳이라고
그야말로 학교 마당에 발 한 번 들이려고 왔더랬지요.
“아, 형찬아!”
어찌 그냥 보낼꺼나요,
물꼬 아이이고 후원회원 논두렁 가족이기도 합니다.
바로 나가시려는 걸 붙잡습니다.
“국수나 한 그릇 드시고...”
‘아고, 일 많은 날인디...’
그런데, 이런 게 바로 물꼬의 일 아니려나 하며
어느 순간 좇기는 마음 놔버렸더니
갑자기 시간도 늘어나던 걸요.
오래 아이를 통해 아는 분들이라고 마음이 어찌나 좋던지요.
“이렇게 얼굴 봤을 때 밥 한 끼라도 먹자 하지
언제 또 굳이 날을 받겠는지요.”
우르르 오셨던 청주의 손님들은 너무 많은 이들이 예고 없이 온 터라
도저히 그리 신세질 수 없다며 떠나고,
형찬이네랑 오붓하게 남았습니다.

“아버님은...”
당장 가마솥방이며 본관 비닐 떼는 일을 맡겼습니다.
마침 필요한 일에 때마침 할 수 있는 손이 온 게지요.
산골에서 날마다 체험하는 바로 그 기적 말입니다.
어찌나 일을 야물게 잘하시는지,
시골 어르신들 댁에 가서도 혼자 그리 다 도맡는다셨지요.
자주 걸음하시면 좋겠습니다, 하하.
“어머님은...”
부추를 같이 캐러가고 다듬고,
밥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더운 기가 물러가는 저녁 마당에서 아이들이랑 딸기도 땄습니다.
아, 좋은 저녁이었지요.
보고 싶은 이들 그리 다녀가니 좋습디다.
고마웠지요.

집안에 혼례가 있어 기락샘은 식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역에 바래다주고 오지요.
집안 대표노릇이 어렵습니다.
물꼬를 거의 빠져나가지 못하고 사니
늘 집안대소사는 모두 그의 몫이고 있지요.
자주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나는 절대 찬성 못한다.”
서울에 도착한 한 밤, 다시 전화를 해와서 못을 박습니다.
아내의 간기증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지요.
주면 좋지, 나눌 게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내 생에 더 복된 일이지,
그리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가족 설득이 큰 난관이겠습니다.

아이가 주에 한 차례 머슴을 살러가는 날입니다.
밤에 넘어가 자고 다음날 종일 일을 하지요.
“가는 건 좋은데 가서 혼자 자는 건 좀...”
가서 혼자 2층에 자는 게 싫다 합니다.
그래도 안 간다고는 안 하니 기특하지요.
그런데, 오늘밤은 데려다줄 수가 없었습니다, 일이 많아.
낼 아침 일찍 간다 하니 은근 반기데요.

새벽 4시,
으윽, 일이 끝날 줄을 모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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