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빈들 여는 날, 2010. 6.25.쇠날. 흐려가는
빈들모임을 앞두고 있던 한낮, 학교에 달랑 사람 셋 있었습니다.
소사아저씨는 비라도 올세라
생태해우소공사로 도예실을 나와 있던 물건들을 들이고,
아이는 홀로 본관이며 온 건물들을 청소하고 있었지요
“발목이 다 시큰거리네...”
아이가 그랬더랍니다.
여느 빈들이라면 저녁 버스로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자가용도 그 시간에 맞춰 들어서지요.
그런 뒤 좀 노닐다 저녁을 먹으며 일정이 시작되지요.
사람들이 들어서기 좀 전에야 달골에 서둘러 올랐습니다.
이번 빈들은 흙날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올 것이라
한 가정만으로 달골 청소를 하기엔 너무 ‘일’같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여
아이랑 미리 청소를 하자 했지요.
늘 아이가 청소할 때 다른 일을 하고 있던 터라
그 아이가 어찌 움직이는지를 잘 알지 못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야물게 하던지요.
‘누가 소파에 앉아있는 파리똥까지 다 닦아줄 것인가...’
얼른 마치고 내려가 저녁 준비를 하자 서두르는데,
오늘 온다던 한 가정이 알고 보니 내일 도착이었고,
오겠다고는 하였으나 연락 늦어 아니 오나 부다 했던 가정이
저녁을 먹고 들어서겠다는 소식 닿았습니다.
시간을 벌었지요.
아이랑 느긋하게 구석구석 청소를 좀 합니다.
햇발동은 달골식구들이 해놓고 오늘 이른 아침 서울길에 올랐으니
손이 아니 가도 됐고,
창고동과 벼르던 수채 구멍 다섯 개를 시원하게 닦았지요.
저녁 8시 쯤 주욱샘네 가족 넷이 도착했습니다,
막걸리며 먹을거리들을 잔뜩 실어.
함께 있으면 참 신이 나는 주욱샘입니다.
품앗이일꾼으로 함께 했던 뜨거웠던 그 여름 계자에 대해,
그리고 두어 해 보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해
달골에서 2시까지 이야기 이어졌지요.
올 3월 충남대 교수로 자리를 잡게 된 주욱샘은
야외체육관련 연구대상으로 물꼬를 선정했고,
그래서 물꼬 편에도 연구비가 나왔답니다.
오늘 대학으로부터 입금되었더랬지요.
큰돈이었습니다.
“자주 이런 일 있으면 좋겠네, 하하.”
그렇게 또 물꼬를 도와주었네요.
참, 오후에 읍내 우체국에서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지난 주 쇠날 면소재지 우체국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고
그 건에 대해 어제 우정사업본부에 건의를 한 일 때문이었지요.
오후 3:32, 그날 면소재지에 급한 우편물을 들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문에는 커다란 차 하나가 서서 차의 뒷문을 열고 있었지요.
6시에 업무가 마감인 줄 알고 온 그이는
전산이 마감되었단 소리에 당황합니다.
영동에서 그곳이 가장 먼저 우편물을 수거해가는 곳이라
3시 30분이면 오늘 소인을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그런데 사정이 급한 그이는 앞에 주차하고 있는 커다란 트럭을 가리키며
다음 주 월요일까지 들어가야 하는 서류인데,
저 차 아니냐, 하며 사정을 하지요.
그 사이 차는 떠나고 말았습니다.
“급하시면 황간이나 영동우체국까지 가시면 됩니다.”
3:38, 그가 맥없이 나가더군요.
그런데요, 정말 길이 없었을까요?
사정이 급한 이가 들어서고 있었다면
그를 위해 잠시 차를 세워줄 수는 없었을까요?
‘전산마감’이란 게 대단히 복잡한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는지요.
하려 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그 일에 전문가일 테니까 말입니다.
물론 이들은, 한 곳에서 일이 밀리면 다른 곳까지 미칠 영향 때문에
제 때 해야 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긴 거리를 갈 때 평소보다 조금만 더 달려준다면
몇 분차 정도는 얼마든지 만회가 가능하지 않던가요.
상황을 보면 분명 그이가 늦은 것이지만
그의 곤란한 처지를 헤아리려는 마음이 부족했던 건 아닌가,
야속합디다.
그래서 그런 마음의 모자람에 대한 아쉬움을 쓴 글이었더랬지요.
하여 해명과 사과를 하려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일의 외곽에 선 이들이 아니라 당사자 아니겠는지요.
그 시간에 서로 마주했던 그들 말입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좋은 계기가 되면 좋겠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