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계자 나흗날, 2010. 7.28.물날. 비 추적이던 아침 지나고


야삼경, 읍내 병원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잠자리 준비를 하던 남자방에서 주용이가
세 군데나 말벌에 쏘인 것입니다.
119를 불러갈 수도 있었으나
어차피 돌아올 땐 우리 차편을 이용해야 하니
아예 물꼬 차를 끌고 나갔지요,
그만큼 긴박한 상황도 아니고.
가끔 말벌에 쏘여 쇼크사를 한다 듣고는 하니
기본 처방이 된 듯하고 안전해보였으나
혹여나 해서 달려갔습니다.
주사 한 대 맞고 처방약 받아오는 게 전부였네요.
샘들은 하루 정리글만 쓰고 따로 모임 없이 잠을 충분히 자기로 했다 합니다,
낼 이른 아침부터 김밥을 싸서
아이들을 이끌고 종일 높은 산에 오를 것이니.

아침 해건지기는 몸과 마음을 위한 두 마당을 끝내고
마지막 세 마당을 위해 밖을 나갈 참이었지요.
비 부슬거렸습니다.
그러면 또 그런대로 뭔가를 하지요.
대해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큰형님느티나무까지
서로 업어주기로 합니다.
아니, 아니, 실제 나가는 게 아니라
안에서 마치 거기까지 다녀오는 듯 했더란 말이지요.
아직 낯설던 이가 있기라도 했더라면
바로 이 시간 모두 아는 얼굴이 된답니다.

아침, 밥상머리 공연이 또 이어졌습니다.
피아니스트(?) 김도언님 초빙이었지요, 하하.
규범이 맨밥만 먹고 국은 안 먹는다고
서현샘이 곁에서 국을 권하고 있었습니다.
밥상은 아이들의 소소한 가정사며 학교생활을 듣는 수다의 장이고
식습관에서부터 먹는 것에 대해 두루 살펴보는 장이지요.
말을 아직 섞지 못한 이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곳이기도 합니다.

종일 예제 좀 시끄러웠지요.
여럿 다투고, 여럿 울었습니다.
원준이는 만두 때문에 찬영이랑 싸워 격분하고,
원규는 연극놀이에서 모둠대표로 가위바위보를 하지 못해 분노하고,
기환이는 어른들이 마시던 아이스티를 안준다고 화가 났습니다.
기환이와 계윤이 다투고,
혜랑이는 엄마가 안 보인다고 울고,
진이는 눈에 티끌이 들어가 울고,
여름이는 발표 목소리가 작아서 “크게 말해”라는 옆자리의 핀잔에 울고,
재창이는 친구가 등짝을 때렸다고 울고,
결국 하루를 마감할 땐 주용이가 벌에 쏘여 울었지요.

일정도 일정이지만 시간과 시간 사이를 채우는
아이들의 일정이야말로 물꼬 속틀의 백미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의 역사는 바로 그 쉬는 시간에 이루어지지요.
그것은 어른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이들이 그들의 욕구대로 만들어가는 시간이기 때문일 겝니다.
이 뜨거운 날에도 죽어라 공을 차고 책을 읽고
잠자리를 좇아다니고 개집을 돌고 수건을 돌리고
바둑을 하고 체스를 하고 산책을 하고 누워서 뒹굴거리고...
새끼일꾼 인영이는
나경이를 비롯한 어린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할머니 같은 느낌이 들더라나요.
새끼일꾼들은 빗자루를 들고 끊임없이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를 쓸고
흐트러진 물건들에 질서를 주고
하루 두어 차례나 다녀오는 물놀이로 넘치고 또 넘치는 빨래를 수습하고
그리고 아이들과 뒹굴며 자신들을 쓰고 있습니다.
물꼬 영광의 자리, 네, 그게 새끼일꾼이라는 이름입니다.

사흘째의 ‘손풀기’를 끝내고,
모두 ‘보글보글’을 위해 모여 그림 동화책 하나 같이 읽으며 시작했습니다.
물꼬는 우리 일꾼들에게도 좋은 교육의 장이 되지요.
새끼일꾼 첫걸음 경록이는 예서 만두를 처음 빚는 답니다.
‘예쁜 만두’집에는
일환 준수 동영 중근 혜랑 동현 규한 우석이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작은 소요 하나 있었네요.
규한이가 만들어놓은 만두피를 우석이가 모르고 먹어버렸고,
화가 난 규한이 발길질에 주먹까지 뻗쳤답니다.
“미안해.”
곧바로, 얼른 자신의 행동을 인정한 우석이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자꾸 숨기려는 우리들을 반성케 했지요.
한편 화를 그런 방식으로 푸는 규한이에게
좋은 다른 방식의 행동을 안내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할 겝니다.
‘오늘도 아이들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리고 저도 조금씩 나아져가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느끼기도 했던 하루였구요. 아이들에게 고맙습니다. 정말 정이 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선영샘의 하루정리글에서)

여름 주용 형찬 민정 규범 기환이는 ‘용감한 만두’를 빚었습니다.
몇 명 안 왔는데,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착한 서현샘, 자꾸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랍니다,
혹 놓쳐진 아이는 없나, 자거나 아파서 누워있는 아이는 없나 하고.
‘참 고운 만두’집엔 나경 은결 지은 현주 자누 정인 미래 해온 지호 원규가,
그렇다면 이름이 올려지지 않은 이들은 ‘씩씩한 만두’에 들어갔겠지요.
방마다 먼저 군만두 한 판을 구워먹고,
만두피를 만들고 있던 ‘빛나는 보자기’(규동 유진 경이 재호 현우)에
또 다른 한 판을 구워 보냈습니다.
방방이 쪄서도 먹은 뒤,
마지막 남은 반죽으로 수제비 한 솥단지 끓여 내놓으니
그것도 바닥을 다 냈지요.
그리고 남은 속으로 볶음밥도 한 솥!

이 여름, 하룬들 물놀이를 놓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불 앞에서 땀 삘삘 흘린 뒤였지요.
조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큰 선심이나 쓰는 듯 가자 합니다.
갈 수 있고, 갈 줄 알면서
서로 그리 실랑이를 해보는 즐거운 저녁답이었지요.

어느새 해지고 어둠 내립니다.
연극놀이 시간까지 다 잡아먹었는데,
아무래도 그냥 가기 섭섭단 말이지요.
한데모임 대신 연극놀이로 시간을 잡습니다.
‘준비는 재밌었으나 공연은 산만했다.’라는 중평도 있었으나
과정의 즐거움이 또 이곳의 큰 매력이기도 하지요.
형찬이의 엿장수 분장과 소품이 절대적으로 최우수상이었답니다.
‘끝을 잘 마쳐서 다행이지만 그 화장을 지우느냐고 생고생을 했다. 아, 여자가 신기하다. 어쩌다 한번 화장을 해도 이렇게 힘든데 여자들은 어떻게 매일하는지 놀라웠다.’(새끼일꾼 가람의 하루 정리글에서)
분장이며 의상이며 한바탕 대소동이었지요,
음향과 조명까지 켜고.
재밌습디다, 아이들하고 사는 일, 참 즐겁습니다.

찬일샘이 훈육샘이 된 하루였습니다.
제(자기) 말에 더 바쁜 현서가 그예 찬일샘한테 한소리 듣고,
대동놀이에서 화를 온통 어거지처럼 내놓던 기환이가 불려가고...
‘이게 제 내면의 화 때문인지, 진정 아이들을 위해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화를 내는 건지 조금 혼동이 되기도...’(찬일샘의 하루 정리글에서)
그러면서 아이가 자라고, 교사도 또 사람이 되는 게지요, 뭐.
아이들을 만나며 혹은 키우며
화나 매가 쉬운 방법이기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
화도 아이가 설득될 수 있는 지점에서 내야 된다는 것,
그래도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진 경험이 아이들을 더욱 따뜻하게 자라게 한다는 것,
행동이 문제라면 대체행동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것,
어른들에겐 그런 생각들을 나눈 하루였더랍니다.

‘주용이가 말벌에 쏘여 병원에 갔다. 근데 왠지 내 탓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느껴졌다.’
(새끼일꾼 경록의 하루 정리글에서)
그래요,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건 그런 거지요.
뭘 해도 보호자 탓인 겁니다, 그런 무게인 겁니다.
한밤 병원을 다녀온 주용,
멀쩡히 잘 자고 있는 새벽 4시입니다.
늘 선한 일에 함께 하는 하늘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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