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계자 닷샛날, 2010. 8. 5.나무날. 빗방울 지났으나 갬 / 산오름


산이 거기 있었고,
우리는 올라가고 그리고 내려왔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고 땅이 갈라져도 간다 하였으니
오후에 비 내린다는 일기예보에도, 흐린 하늘에도 으레 가는 줄 알고
이른 아침부터 모두가 부산했더랍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난생 처음 김밥을 싸봤다. 처음에는 김밥이라길래 햄과 여러 채소들을 넣는 줄 알았는데, 그냥 김에 멸치 잣 넣은 밥에 김치를 넣어 말아서 싼것이였다.(아침엔 별로라 생각했지만, 점심에 열심히 산을 탄 후 먹으니 맛이 일품이었다.)’(새끼일꾼 경철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김치김밥에 정말 김치만 들어가는 김밥이라 이게 과연 맛있을지 생각하며 쌌는데 산에서 먹으니 꿀맛~ 너무 맛있었다.’(찬별샘의 같은 글에서)
‘정신없이 일어나서 특이한 김밥을 쌌다. 그냥 김에 멸치를 넣은 밥, 참치를 섞은 김치가 재료였다. 막 싸고 막 썰은 것 같았지만 정성을 들였다. 보통 김밥처럼 몇 개씩 썰 줄 알았는데 세등분으로 잘라서 잘 먹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없었다. 잘 뜯어먹는 아이들을 보고 내가 배불렀다.’(수지샘의 같은 글에서)

날이 덥긴 더웠던 모양입니다.
가래떡을 썰어와 나절가웃 밖에 두었는데,
그만 곰팡이 슬었더랬지요.
그나저나 아침으로 떡국을 끓여내겠다 준비했던 부엌에서
아주 난감하였겠습니다.
그래도 버스 놓치지 않게 밥을 해내
그 능력에 얼마나 고맙던지요.
대문 앞에서 복장검사를 하고 마을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대해계곡 들머리에서 물한리 가는 버스에 오를 거지요.
근데, 아이들이 절반도 오지 않았는데 버스 벌써 도착입니다.
그럴 땐 기사를 잘 만나야는데,
못 기다린다는 어깃장에 희중샘은 한 다리를 문에 걸쳐놓고,
저는 부지런히 아이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겨우 모두 다 올랐더랬지요.
그런데 기사 아저씨 뭔가로 아주 심통난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타고 있는데도 성질내며 거칠게 운전하고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아이들을 굳이 마지막 정거장에다 내려놓았습니다.
대개는 탄 사람들 편의를 위해 주차장 안에 들어가 부려주는데 말이지요.
화가 나 버스에 올라 한 소리 했는데
더 화를 내려다 그놈의 아이들 땜에 또 참았지요.
아침부터 그럴 건 또 뭐랍니까.
‘햇빛은 쨍쨍하고 짐은 있고,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산타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다 모였다. 그래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서 많이 불편하지는 않았다.’(수지샘)

물꼬의 뒷간을 쓰던 아이들, 주차장의 화려한 화장실이 고맙지요.
거기부터 다들 들여다보고 돌아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이었겠지요, 차가 많이 보이지 않았던 건.
산안내도 앞.
산에 드는 자의 자세, 혹여 길을 잃었을 때, 서로를 찾을 때,
우리가 만날 상황들에 대한 안내와
어느 길로 오를지 결정을 합니다.
그때, 전화가 울렸지요.
산에 들면 불통지역이 더 많지만
그래도 아이들 데리고 나선 길이라
아이들 이 끝과 저 끝의 샘들이 손전화를 쥐고 있습니다.
밥 가방 하나 두고 왔다는 부엌샘의 전갈이었지요.
다행이기도 합니다, 다른 때라면 별 수 없이 오를 것을,
마침 이정석님 차가 있었더란 말이지요.
그리하야 길을 나서기 전 김밥 무사 도착이었답니다.
“저보다 앞에 가면 점심이 사라지는 마술이 일어납니다.
꼭 그런 마술을 보고프면 그리 하시도록.
끝은 희중샘이 갑니다.
그보다 늦으면 초코파이가 날아가죠.”
그렇게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소리가 채우는 계곡을 옆에 끼고
시원하기를 넘어 거칠다 싶을 만치 부는 계곡바람을 거스르며
재잘재잘 걸었습니다.
시작점에 이르러 땀을 식히고
우리가 오를 산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해를 삼킨 소년이 왜 그리했는지,
그리고 해를 딴 부자는 또 왜 그리 했는지,
이 산 꼭대기 잠자리는 왜 그리 떼를 지어 날아오를 수밖에 없는지.
그 옛이야기를 따라 산을 오릅니다.
“1지점에서 사탕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1지점.
첫 계곡을 건너며 물가에서 다리쉼을 합니다.
사탕껍질은 낮밥을 먹는 표가 될 것이니 꼭꼭 쥐고들 오르겠지요.
다시 나아갑니다.
사람들이 한 무리씩 우리 곁을 지나도 갑니다.
두어 해 전 정비해둔 부분은 등산로라기보다 산책로 같아
가파르게 몰아쳐왔던 몸을 잠시 풀어주게도 하였지요.
“어, 다래다!”
처음 본다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잘라서 안을 보여주니 양다래 키위와 견주어보고는
맞다, 맞다 하데요.
산이 준 선물 하나였답니다.
곧 잘 익어 달기도 달겠지요.
다시 계곡 하나 되건넙니다.
이제부터 굴 같은 그늘이 능선까지 내리 이어질 것입니다.
여름에 오르기 이만한 산이 없답니다.

2지점.
‘1지점까지는 무난히 넘어갔는데 점점 바위가 많이 생기고, 가파라졌다. 땀이 슬슬 보이고 숨이 찼다. 아이들도 힘들어해서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할 수 있다는 말에 내가 힘이 나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도와줄 때는 힘이 들었지만 내가 이끌어준다는 것에 믿고 따라주니까 고마웠다.’(수지샘)
좁기는 하나 더는 물을 만날 수 없는 마지막 지점의 물이라
울퉁불퉁 바위들로 좀 불편하긴 해도 꼭 쉬는 곳이지요,
물도 채우고 숨도 한 번 고르고.
“물꼬가 부자지요. 곳곳에 둔 근사한 화장실이 많습니다.
저어기 바위 뒤, 나무 뒤, 언덕 뒤!”
화장지를 찾아 다녀오기도 하고,
시원시원하게 볼 일들을 보고 화색이 돌아들 오기도 하였습니다.

3지점을 향해 가는 길,
어딘가에서 길이 거칠어집니다.
어, 순간, 갈림길에서 그만
오른쪽으로 꺾어 위를 향해 오르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길을 잃은 게지요.
물론 없는 길은 아닙니다.
주 길이 아니고 가시덤불도 있어 피해가는 길이지요.
갈래길에서 선두가 깊은 생각에 잠기며 지나쳐버린 것입니다.
나아갈까 돌아갈까 망설이지요.
그리 멀리 온 것은 아닙니다.
좀 험한 길이긴 합니다.
그런데, 나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가면 길이 됩니다!
그만큼 또 무엇인가를 산은 우리에게 선물로 내밀 겝니다.
‘쭉쭉 올라가다가 중간에 웬 이상한 길을 가길래 뭐지 했는데 올라왔는데 힘들게 다 올라와서 옆에 보니 길이 있길래 그냥 신기해했다.’(재훈샘)
가시밭길을 헤치고 나아갑니다.
가시에 찔렸다 울고 미끄러졌다 울고 안 간다고 소리 지르고...
자꾸 발이 미끄러지는 아주 가파른 길을 웬만큼 기어오른 뒤
아, 드디어 능선 보였습니다.
“능선이다!”

민주지산과 석기봉을 잇는 능선길,
오른쪽으로 틀어 민주지산을 향해 걸었습니다.
원래는 쪽새골을 타고 올랐을 길을 그리 둘러가게 되었지요.
그렇게 몇 백 미터 나아가니 우리들의 3지점이 기다리고 있었더랍니다.
잠시 숨을 돌렸지요.
그런데, 뒤에 남은 샘은 둘이라는데,
오지 않은 아이들이 열도 훨 넘습니다.
“이런!”
그럼 두 사람에게 그 아이들을 다 맡겼더란 말인가요.
총알처럼 튀어 달려갑니다.
바로 앞에 한 무리 오고 있었고,
남은 샘이 셋에다 아이들 일곱이란 걸 확인한 순간이었지요.

아이들과 잦은 다툼이 있었던 우리 상한이가
맨 앞 패에서 열심히 걸어갑니다.
여전히 사람들과 부딪히지만
그래도 산이라 그 마음도 어루만져졌을 겝니다.
그 상한이가 누구에겐가 물었습니다.
“희중샘이 왜 뒤에 오는지 알아?”
“왜?”
“너무 느려서.”
‘처음에는 희중샘과 맨 뒤에서 갔는데 정말 뒤에서 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뒤처지는 아이들을 받쳐주면서 올라가는데, 다리 아프다, 힘들다, 이렇게 징징대는 아이들 속에 있다 보면 정말 화가 많이 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채환이가 몇 발자국 가고 서고, 몇 발자국 가고 주저앉고 그래서 정말 애를 먹었다. 그래도 채환이를 엄청나게 달래면서 올라갔다.’(새끼일꾼 경철인가요?)
최근 몇 년 희중샘이 아주 욕을 봅니다.
그가 있어 계자를 한다 싶을 만치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도 성큼 성장하였습니다.
그저 좋은 샘이기만 하던 그가
이제 보다 교육적 고민들을 하는 지점에 있지요,
생에 대해서도.
보다 훌륭한 젊은이 하나를 우린 또 만날 겝니다.

초코파이를 ‘보여주기’로 한 3지점.
모두 모였고, 정상은 겨우 백 미터나 남았으려나요.
서로 격려하며 나아가니,
하나씩 골을 빠져나오며 정상에서 질러대는 소리들이라니...
처져있던 세 쌍둥이 더는 못 가겠다 하는데,
아, 저 꼭대기를 보지 못하면 힘든 것만 남지 않으려나 싶어
그예 몰아갔더랍니다.
아래 훤하게 사방 뚫려 내려다보였고,
저 멀리 겹겹이 둘러친 산은 장관이지요.
잠자리는 또 얼마나 많이도 날던지요.
아이들만 시원했겠는지요.
‘그 다음에 이제 정상에 갔는데 정말 쉬원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재훈샘)
‘정상에 오르는 순간 마음에 맺혀있던 응어리들이 뻥 뚫리는 기부도 참 좋았어요.’(아람샘)
‘정상에 올라갔을 땐 정말 너무 좋아 계속 있고 싶었다. 지금까지 힘든 게 싹~ 사라졌다. 내려올 때 다시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이렇게 높은 산 올랐는데 좋았다. 내 자신이 왠지 뿌듯~ 아이들이 대견하고, 오늘 아이들이랑 많이 얘기해서 정말 재밌었고...’(찬별샘)

3지점으로 내려서서 낮밥을 먹습니다.
지난 번 홀라당 다 먹고도 아직 배고팠단 얘길 듣고
이번엔 부엌에서 아주 많이 많이 준비를 했더랍니다.
넉넉히 먹고 내려오며 생각나면 또 먹기도 하였지요.
오가는 어른들이 정상을 밟았다는 아이들을 향해
대단하단 칭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이들을 더욱 뿌듯하게 했겠지요.

내려온다고 꼭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만 미끄러지기 일쑤였지요.
그래요, 오르막이라고 꼭 어려운 게 아니듯
내리막이라고 수월한 게 아니란 걸
이 산에서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해봤을 겝니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정상을 찍고 돌아가는 길이니 여유로울 밖에요.
심지어 뛰어도 가는 녀석들이 있었답니다.
그렇게 쉬엄쉬엄 가다 1지점에 이릅니다.
오래 쉬지요.
발도 담그고 찰방거립니다.
아이들 발도 닦아줍니다.
이 가녀린 발목으로, 이 작은 발로 더 산을 올랐단 말이지요.
‘옥샘이 발을 닦아주길래 쑥스러우면서도 좋았다.’(재훈샘)

승범이며 류옥하다며 건표며
아이들이 가방도 울러 매고 오른 산입니다.
정작 몸이 무거운 샘들에 비해
외려 아이들이 아이들을 받쳐주었습니다.
서로 어깨 겯는 법 역시 이 산오름이 가르쳐주고 있었지요.
‘계자를 끝까지 참여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산오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어른들이 타기도 힘든 산을 아이들이 더 잘 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고 서로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어른보다 아이가 더 낫다 라는 말을 왜 하게 되는지 알겠더라구요. 산의 풍경과 아이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아람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무사히 물한에서 나오는 버스를 탔고,
10여 분만에 내린 이 골짝 들머리에서 다시 1.7킬로미터를 걸어옵니다.
힘겨운 그 길을 왜 우리는 걸었더랍니까.
‘오랫동안 산을 타서 그런지 채환이 같이 어린 아이들은 투정도 부리고 짜증도 내고 했지만 말을 잘 듣고 끈기있게 산을 오르고 내리고 물꼬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물꼬에서 산에 가는 이유는 내 생각엔 ‘민주지산은 쉽지 않은 산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 하나에 들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힘들고 고된 일을 만날 때에 힘을 얻고 잘 해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새끼일꾼 윤지)
씻고 저녁을 먹은 뒤 그 물음을 들고 앉았더랬지요.
종일 걷고도 돌아와서 여전히 뛰어다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건강하라고,
올라간 자만이 누리는 것을 볼라고,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만나면 그리 넘으라고,
산의 정기를 받으라고...
네, 그랬습니다.
거기 또 하나 더하지요.
아이들도 찌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거 훌훌 털어내라고도 다녀왔더랍니다.
산만큼 훌륭한 스승이 어디 있을려나요.

고래방으로 건너가 마지막 밤의 대동놀이 ‘강강술래’를 합니다.
내내 하고팠다던 새끼일꾼 윤지도 아주 펄펄 날고
처음해보는 수지샘도 찬별샘도 신이 났고
아, 모두 모두 신명이 났더랍니다.
장작놀이가 이어졌지요.
수지샘은 이렇게 많은 노래를 이리 많이 불러보기 처음이라던가요.
구운 감자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마당에서 한 밤 들어오는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아주 시커매져있었답니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슬프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나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다. 물꼬에서 1일이 1주일이면 좋겠다. 물꼬에 있는 시간들이 너무나 즐겁고 좋고 아름답고 행복하다.’(새끼일꾼 윤지)
‘5박 6일 길기도 길지만 짧기도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아쉽고, 계자 한번 더 하고 싶다. 정말 정말 물꼬에서 보낸 모든 시간이 감사하고 값지고 너무 너무 좋다.’(새끼일꾼 진주)
‘마지막이라 아쉬웠지만 다음에 또 다시 볼 생각이 있기 때문에 많이 슬프지는 않았다.’(새끼일꾼 경철)
‘몇 년 전에는 내가 물꼬에 와서 이렇게 행동했었을 꺼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는 언젠가는 다시 물꼬를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있었을 때는 감정이 메말라 있었는데 물꼬에서 점차 옛날에 나로 돌아오는 것 같다. 아무튼 오늘 하루 정말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재미있기도 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물꼬를 또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진혁샘)

새끼일꾼 고 2 진주는 아이 적부터 이곳에 왔던 친구입니다.
“진행 안되는 게 눈에 보이고, 샘들 몰려있고...”
오늘 샘들 하루재기에서 그가 시작했던 말입니다.
전체 진행이 눈에 보이는 거지요.
계자를 진행하며 아이들도 그러하겠지만
새끼일꾼들을 포함한 어른들 역시 많이 배웁니다.
참 값진 경험이지요.
이런 것들이 다른 일을 하는데도 큰 바탕이 될 겝니다.
물꼬에서 한 해 움직이면 어디 가서고 제 몫 단단히 한다고들 합니다.
그만큼 좋은 훈련의 장이 된다는 말일 테지요.
하루재기에선 아이들을 향한 이야기도 넘치지만
이렇게 우리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진중하게 다뤄집니다.
“샘들끼리 서로 즐거움을 나누는 건 나누는 거지만
집중은 놓치지 말아야...”
반성도 있지요.
유쾌함과 즐거움이 전체분위기에 도움을 주지만
중심으로 잘 향해있지 않으면 자칫 전체 진행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겝니다.
“모든 하루 일정이 끝난 뒤 세면대, 욕실, 신발 같은 것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도 좀 아쉽더라구요.”
이곳의 교사는 그런 것도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지요.
하루재기 뒤 가마솥방 의자가 끝까지 밀어 넣어지지 않거나
상 위에 필기구가 널리는 거며에 까지
단단히 서로의 행적을 챙겨봅니다.
비난하려고 한 이야기가 아니지요.
비난을 어따가 쓰겠는지요.
깊이 잘 배우는 자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좋은 인연을 만들어준 물꼬가 고맙다.’
수지샘이 그랬습니다.
고마울 일이다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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