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계자 이튿날, 2010. 8. 9.달날. 맑음

조회 수 1123 추천 수 0 2010.08.22 00:09:00

140 계자 이튿날, 2010. 8. 9.달날. 맑음


원준이가 좀 외로워했고, 아이들이 위로했습니다.
함께 하는 건 그런 겁니다, 그렇게 마음을 살피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금새 한식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제 아이들이 비어있는 속틀을 놓고 고민했고 의논했습니다.
결과를 샘들한테 넘겼고,
샘들은 늦은 밤 머리 맞대고 틀 안에 넣어보았지요.
오늘 그 승인절차를 거쳤습니다.
혹 마음이 바뀐다면 그때 가서 또 의논을 하기로 합니다.

일이 있어 하루 늦게 도착한 재욱,
동생 동선이 부모님들을 따라 왔지요.
“뭘 가니? 같이 있다 가면 되지.”
그렇게 남았습니다.
가방을 하나 챙겨주고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옷방에서 맞춰주었지요.
이 여름 첫 일정에 가방 없이 나타났던 형제가 이미 있었더랬습니다.
해보니 늘지요.
가방 짐 싸주는 것도 늘었습니다려.

그런데 저녁, 동선이 교무실로 따라 들어왔습니다.
“옥샘, 그런데, 큰일 났어요. 제 기차표가 없어요.”
“아, 그렇구나. 형들이랑 같이 맞춰 줄게.”
헌데 좀 있다 또 왔습니다.
“그런데, 형들도, 기차표가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래, 형아들한테 확인할게.”
준비 없이 왔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저 알아 필요한 건 다 말해올 테니 말입니다.

침묵하며 명상처럼 하는 ‘손풀기’가 있었고,
‘열린교실’이 여덟 개 교실로 열렸습니다.
‘풍선이랑’: 나영 승호 슬찬 원준
포도도 만들고 칼도 만들어 기사도 되어보고
머리띠도 해서 천사처럼 장식하고 펼쳐보이기에 나타난 그들이었습니다.
올 여름 내리 세 차례 풍선이랑을 맡았던 희중샘,
가르치려하기보다
삐에로처럼 들고 다니며 만들어주는 건 어땠을까 싶더라지요.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풍선으로 무엇을 하기는 어려워서 강좌에서 빼고 그냥 내가 만들어주는 방법으로 일정 내내 풍선을 들고 다니면서 만들어주어 아이들의 흥을 돋는 게 나을 것 같다.’(희중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단추랑’: 세인 세빈 서정 태양 정연
물꼬엔 단추가 많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도 버려지는 옷이 있으면
꼭 단추만은 떼 오지요.
모두 패물 하나씩 장만했습니다.
지난 계자에서 재밌어서 이번 계자에도 신청을 해보면
더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무료하기도 합니다.
늘 ‘변’하지요.
그러므로 쉬 재밌다 말다 할 게 아니라는 생각 들데요.
내 정황이 어떠냐에 따라 같은 것이 재밌기도 하고
다른 것이 재미없기도 하고 그렇더란 말입니다.
오늘은 조금 따분하기도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태양, 의미심장한 한 마디 했더랍니다.
“쓰레기가 좋은 놀잇감이 되는” 좋은 경험을 했다지요.

‘팔찌랑’: 두 주희, 효정, 단비 채원 준하
생리주기 팔찌입니다.
5학년 이상이 대상이었지요.
‘하지만 아직 초경을 하지 않은 아이가 많아 깊은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대충의 주기 윤곽을 알게 되었다.’(진주샘)
담엔 남자아이들도 같이 하면 좋겠다 했지요.

‘병뚜껑이랑’: 태웅 상찬 장훈 도형
어제 상찬이가 장기알이 있느냐 물어왔더랬습니다.
그런데 빠진 알들 많았고
여기 저기 흩어져있었지요.
오늘 병뚜껑에 모인 아이들이 뭘 해볼까 궁리하고 앉았는데,
장기알 만들면 어떻겠냐 제안했더랬습니다.
모두 옳다구나 했지요.
‘풍선이랑’에서도 건너와서 거들었다 합니다.
“한자가 너무 어려워서...”
장기에 쓰이는 한자를 챙겨다 주었다 해도 어려웠겠지요.
느릿느릿 말 많은 상찬,
꿈쩍도 안하고 가만가만 만들고 있더랍니다.
자기 일이 되면 누구라도 더 잘 움직이는 법이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피는 건 중요합니다.
그러면 수업에서 의도하는 것도 그 관심과 연관되어
아이들이 훨씬 흥미롭게 해낼 테지요.
종이상자로 만든 멋진 장기판과 장기알이 등장했고,
여러 아이들이 줄서서 그걸 가지고 놀았습니다.
이 계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싶데요.

‘한땀두땀’: 영훈 태은 보빈
남자애라 안하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참 열심히도 하던 영훈이라지요.
자기 도와주지 말라며 제 손으로 한 땀 한 땀 하더랍니다.
베개에 단다던가요, 만든 장식품을.
“집에 들고 가도 돼요?”
아무렴요.
태은이는 할머니가 하는 걸 봤다며 제법도 하고,
보빈이도 야물게 매듭을 짓고 있었습니다.

‘뚝딱뚝딱’에 누가 들어갔더라...
준우가 우리는 왜 제대로 안 하냐 툴툴거렸다는데...
교실을 맡았던 진홍샘을 오늘 하루재기에서 좀 팔았더랍니다.
제도교육 혹은 오늘날 이 땅의 교육에 대한 일갈이었지요.
나이 마흔을 넘은, 아직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학교 교사인 그입니다.
일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선생질 하는데 문제 없다,
괜히 진홍샘 온 몸으로 직격탄 맞았지요.
삶의 기술 전승이 교육에서 사라진지 오래,
그것은 돈 벌어 그걸로 해결하면 되는 구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게 우리 사는 세상이지요.
열린교실에서 삶과 관계된 기술을 놓치지 않으려는
물꼬의 의지가 출발하는 지점이 거기랍니다.

‘봉숭아랑’엔 윤구, 재현이가 들어갔습니다.
비닐로 싸매고 나와서
인사도 어찌나 꾸벅 잘하던지요.

‘다좋다’: 세영, 훈정, 세훈, 태형, 현준, 주영
그리고 늦게 재욱이도 합류했습니다.
가마솥방에 가서 무엇을 도와드릴까 했다지요,
모두를 위한 일을 해보겠다고.
옥수수 껍질을 벗겼다 합니다.
“옥수수를 삶을 때...”
펼쳐보이기에 나온 그들, 의기양양하게 질문합니다.
마지막 껍질을 남겨 삶으면 더 맛나다는 정보였지요.
모두 다 탄성, 그거 질러주었더랍니다.

낮밥을 먹고 공을 찹니다.
진홍샘, 이제 더는
제도학교에서 중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미련 없다는 그이지요.
무기력해도 보였는데,
아이들하고 어찌나 열심히 공을 차던지요.
“거미손!”
골문을 지키는 그를 아이들은 그리 불렀습니다.
마흔, 이제 더는 못하겠다는 일은 놓을 나이란 생각 들데요.
가르치는 일이 어디 꼭 제도 안에만 있던가요.
아, 경기가 끝난 운동장, 애들은 멀쩡하고 샘들은 지쳤습디다.

‘한껏맘껏’이 이어집니다.
물놀이 갔지요.
동선이는 첨 온 게 틀림없습니다.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암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계곡 가서 샘도 빠뜨려도 돼요? 안 혼나요?”
진지하고 묻고 있었지요.
세 계자를 계속 하고 있는 희중샘, 피로 몰린 듯하였으나
젤 먼저 물로 풍덩 들어갔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내 몸도 사리지 않고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이 저의 임무 같았습니다.’(희중샘)
모두 바위 미끄럼틀이 어제보다 재밌었다네요.
쳐다보면 눈이 아찔아찔한데 말이지요.
노니 놀 줄을 더욱 아는 겝니다.
준우는
‘물살도 세고 위험해서 안 갈라 하는데 자꾸 미끄럼틀이 당겨서’
그래서 안 갈라했는데 갔다나요.
두 계자를 내리 하고 있으니
놀기 더욱 잘 놀아진단 말이지요.
혹 곤함이 크지 않을까 걱정이더니
웬걸요, 내리 3주 다 해도 되겠던 걸요.
한껏 첨벙대는 아이들 보며
놀기란 놀수록 놀아지는 것이 놀기이므로
노는 것이 좋은 놀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농담 절로 나옵디다.

그런데, 도형이는 통 물놀이를 나가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교통이 거의 없어요, 좀은 냉소적이고.
그래도 어른들과는 곧잘 잘 지냅니다.
영훈이랑 재훈이도 계곡길에 빠졌네요, 옷이 젖는 게 싫다는데,
다른 까닭은 아닐까 살펴봐야겠습니다.
샘 몇도 남아 걷어온 아이들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네요.
새끼일꾼 진주과 현곤, 수진이었습니다.
물놀이에서 성빈이 다쳐서
젤 먼저 병원(교무실)으로 후송되어옵니다.
여름 상처란 게 싸매는 게 젤 악이지요.
슬렸는데, 슥슥 털어주고 자기 전에 약 바르러 오라 보냅니다.

돌아온 아이들이 보글보글을 합니다.
상찬, 도형, 세영, 영훈, 태양, 나영이는 김치쌈을 쌉니다.
나는 썰고 싶다, 나는 볶고 싶다,
제 역들을 잘도 맡았지요.
나영이는 순례자였답니다, 집집이 안 간 집이 없었답니다.
김치수제비는 알맹이가 익지 않아 반품되기도 했고,
슬찬이랑 재훈이가 만든 김치핏자는 잘도 팔렸으며,
두 주희, 단비 원준 태웅 장훈이가 내놓은 김치스파게티 역시 그러했지요.
샤워실 뒷마무리로 늦게 참여한 아람샘,
아이들이 자리도 다 잡아주고 재료도 생각해서 적어놓고 있어
마음 아주 든든했다 합니다.
5학년 아이들이 저학년 아이들 이끌어가면서
거의 아이들이 진행하는 분위기였다지요.
김치볶음밥은 효정 보빈 윤구 태은 동선이가 볶았습니다.
‘이명박도 인정한 볶음밥’이라나요.
굉장히 빠르고 수월하고 신들린 듯 볶았다,
저들 후일담이었지요.
오바마도 인정한 맛, 미국에 팔아도 된다고도 합디다.
김치부침개도 부쳤고,
서정, 정연, 세인, 세빈이는 부산식 떡볶이를 만들어놨습니다.
부산서 온 새끼일꾼 계원의 안내를 믿어 봤더라나요.
‘잘 안돼서 아쉬웠지만 만드는 내내 재미있어서 참 좋았다.’(진혁샘)

배를 채운 아이들이 또 마당으로 쏟아집니다.
안에서는 세빈 세아 하다가 체스를 하고,
준하, 서울주희, 훈정은 가마솥방 세현이랑 놀고 있었습니다.
도형 태웅 세영 채원 성빈, 영훈이는 책방에 있었지요.
그렇다면 스물다섯이 마당에 쏟아져서 공을 좇아가고 있다는 거지요.
“옥샘, 축구해도 돼요?”
아까 태양이 소리쳤더랬습니다.
축구해야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이었지요.
그때 6시 갓 넘었는데,
한데모임은 7시 30분은 돼야 할 텐데,
그러니까 한 시간으로도 모자란다 아이들이랍니다.

한데모임을 끝내고 고래방으로 건너가 대동놀이를 합니다.
한참동안 하지 않았던,
옛적에는 계자 첫날에 꼭 했던 전래놀이를 꺼냈습니다,
어른들 어릴 적 날 저물도록 하고 놀았던.
그리고 토끼사냥을 다녀왔습니다.
온 마을이 시끄러웠다마다요.
물꼬의 놀이는 샘들의 적당한 반응이 재미를 더합니다.
그런데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는 주축샘들이
오늘 다른 일들로 본관에 있었는데,
아이들 그래도 잘 놀데요, 충분히 즐겁데요.
맞습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좋아합니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못하고 뭐하고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요.

그리고 마당을 건너 잠자리로 갑니다,
모둠하루재기도 하고 씻기도 한 뒤,
샘들이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며.
어둔 마당으로 빠져나와 본관을 향할 때
머리 위로 무수히 별들 쏟아지고 있었지요.
“아...”
아이들의 감탄이었고,
“환상적이다!”
“아, 푸근해진다!”
샘들 탄성이었습니다.
미리내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더랍니다.

방 불을 끄고 가마솥방에 건너온 샘들 하루재기를 마칠 무렵,
세인 세빈 태은 세영 보빈이가 왔습니다.
“엉? 여태 안 잤어?”
배가 고프다 했습니다.
그러면 뭘 좀 멕이며 되지요, 그게 무에 어려울라구요.
빵에 물꼬표 사과잼을 발라 우유랑 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아이들이 한껏 놀고
우리 어른들이 그들을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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