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27.쇠날. 비 올 듯 올 듯

조회 수 1131 추천 수 0 2010.09.07 01:22:00

2010. 8.27.쇠날. 비 올 듯 올 듯


비 올 듯 올 듯 하더니 소식 없었습니다.
“이럴 땐 아니 오더라, 사람도 일도.”
누군가의 우스개가 딱이네 싶데요.

미국 친구 하나랑 이른 저녁을 시작으로
오래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외곽의 레스토랑을 거쳐 핏자집을 거쳐
채식식당으로 차를 마시러 갔지요.
방학 보낸 이야기며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옆자리에 아는 분이 앉았습니다.
그 맞은 편에 있는 이는 처음 봅니다.
농사꾼으로 직접 구운 소금을 알리러 왔다 했습니다.
헌데 세상 참 좋지요.
그가 새로 정착하려고 땅을 산 곳이
우리 산골 저 끝마을에 있는 한 암자 위로 합니다.
이렇게 또 인연 하나 닿았더랍니다.
좋은 농사 선생을 가까이 두게 되었습니다.

“우울하네.”
그리 시작하는 선배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소설가 이윤기 선생님 별세하셨다 합니다.
짧은 제 글 한 편 읽으시고 글을 쓰라 독려해주셨던 어른입니다.
반쪽이 최정현 선생의 소개로 인사동에서 뵈었더랬습니다.
가까운 직지사 흥선스님을 뵐 때는 번번이 비껴가다가
정작 서울 인사동에서야 뵈올 수 있었지요.
몇 마디 나눠보고는 그가 어디 출신인지를 대번에 알아내던,
영어 억양을 듣고 어디 출신인지를 또한 알던 당신이셨습니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사람이 찾아오면 내외분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맞기로 유명하셨지요.
당신의 전작을 읽은 한 사람을 제자 1호로 받아들이고
그의 주례를 섰던 일화도 유명합니다.
선생님의 단편들을 읽으며 소설쓰기를 배웠습니다.
그 깊이와 반전에 매료되었더랬지요.
큰 어른 한 분 떠나셨습니다.
저는 아직 글을 시작도 못했는데..

목순옥 여사도 세상 버렸다는 소식입니다.
20년도 더 된 인연입니다.
그때 지금은 소설가가 된 당시의 기자 김훈선생을 뵈었고,
천상병 시인을 만났고,
목여사님이 운영하던 찻집 ‘귀천’을 기웃거리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한 시절이 떠나갔지요.
아주 떠났습니다.

아이가 서울을 갔습니다.
가기 전 그는 고장 난 디지털카메라 건을 처리해놓았지요.
판매회사에 보낼 수리요청서를 뽑아 기록도 다 하고
마지막 사인 자리만 남겨놓고 어미한테 내밀었습니다.
포장할 상자도 찾아다놓고
포장에 필요한 다른 물건들도 다 챙겨주었지요.
정말 많은 일을 그가 하는 이곳입니다.
아이가 어쩌다 온 서울이라고
아비는 아이를 위해 박물관을 가거나 전시회를 가거나 공연을 보자는데,
아이는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뒹군다 했답니다.
저 말마따나 ‘나, 휴가 온 거야.’란 거지요.
산골에서 어미를 좇아 사느라
너무 많은 짐을 아이가 지고 사는 건 아닌가,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도 쫌 들던 밤이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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