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19.해날. 해 떨어지자 비도
“무슨 일이야?”
“다 했어요?”
좇아오며 건네는 아이 말들입니다.
이 산골이 키워준 아이는
어느새 같이 일하는 동료, 혹은 전체 진행자가 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도 없는 곳에서 학교도 아니 보내고
아이 바보 만들겠다고 걱정하시던 어르신들이
오며 가며 저 아이를 키웠고,
달과 별과 바람과 흙이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이곳에서의 우리 삶이 충분한 까닭이지요.
사람이 들어오면 기대란 걸 합니다.
그런데 오래 이곳에서 지낸 삶은
그저 손 하나 발 하나 잠시만 보태도
그게 다 고맙다는 훈련의 시간이 되었지요.
그 기대가 어긋지며 갈등으로 이어지는 걸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보아왔더랬습니다.
다른 식구들 밥상만 차려도 이곳에선 최고의 도움입니다.
오늘 아침은 세아샘이 소사아저씨 밥상을 차렸습니다.
덕분에 여유 있는 아침이었지요.
한가위를 쇠기 위해 기락샘도 들어왔습니다.
서울에서 있은 어머니 기제를 끝내고 오느라
하루가 늦었지요.
오후에는 온 식구들이 나가
학교 둘레며 닭장 앞과 장순이 앞의 호두도 따고
배추 모종도 옮겨 심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배추가 좀 늦었습니다.
이번에는 비로 늦었지요.
마을의 아주 먼저 심은 집들이야 배추가 제법 커 올랐지만
한발 앞서 심었던 집들은 비에 그만 다 녹아버렸습니다.
늦은 걸 고마워해얄 판이라지요.
아이가 붓글 하나 썼습니다.
가마솥방에는 물꼬의 생각 한 자락 읽을 수 있는
큰 벽글씨가 있었더랬습니다.
공사를 하며 떼냈더랬지요.
‘밥은 하늘입니다’
쓱쓱 쉽게도 썼지요.
아이의 큰 장점입니다.
(붓이 익숙한 까닭도 있을 겝니다).
하라 하면 뚝딱뚝딱 척척척척 쓱쓱쓱쓱 그냥 합니다.
그래요, ‘그냥’ 하는 거 중요합니다.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또 그만이지요.
그런들 어떻단 말인가요.
아이로부터 일을 쉽게 대하는 법을 또 배웁니다.